우리말과 우리 생각의 유형

우리말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우리의 생각과 세계관을 담는 그릇이에요. 말과 생각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말의 특성을 이해하면 한국인의 사고방식도 들여다볼 수 있어요. 이 글에서는 우리말의 특성과 우리 생각의 세 가지 층을 살펴보며, 언어와 사고의 아름다운 상호작용을 알아볼게요.
우리말의 정의와 기본 개념
우리말은 크게 순우리말과 한자어로 나눌 수 있어요. 순우리말은 외래어의 영향 없이 우리 민족이 오랜 시간 사용해온 고유어를 말하고, 한자어는 중국에서 들어와 우리식으로 발음하고 의미를 부여한 말이에요.
우리말의 가장 큰 특징은 감정과 뉘앙스를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울적하다', '서글프다', '그리워하다' 같은 표현들은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담아내죠. 국어사전에는 약 50만 개가 넘는 어휘가 수록되어 있어 그 다양성과 깊이를 보여줘요.
한글 창제 이후 우리말은 계속 발전해왔어요. 세종대왕이 1443년에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우리말은 한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언어 체계로 성장했어요.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우리말을 지키려는 노력이 더해져 언어적 자부심과 가치가 더욱 깊어졌답니다.
우리 생각의 세 가지 유형
우리의 생각은 세 개의 층으로 나눌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느낌'의 층이에요. 이것은 즉각적인 감정적 반응과 초감정을 포함해요.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원초적 감정부터 미묘한 감정의 변화까지 모두 이 층에 속해요.
두 번째는 '생각'의 층으로, 논리적 판단과 이성적 사유가 이루어지는 영역이에요. 여기서는 정보를 분석하고, 비교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일어나요.
세 번째는 '뜻'의 층인데, 의식적 의지와 가치 판단이 이루어지는 곳이에요.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 결정하는 가치관이 형성되는 층이죠.
이 세 층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다음 표를 통해 일상에서의 세 유형 사례를 살펴볼 수 있어요:
| 생각의 유형 | 일상 사례 | 특징 |
|---|---|---|
| 느낌 | "아이, 추워!" | 즉각적, 본능적 반응 |
| 생각 | "오늘은 영하 10도니까 두꺼운 옷을 입어야겠다." | 분석과 판단 |
| 뜻 | "환경을 위해 난방보다 옷을 더 챙겨 입어야겠다." | 가치 기반 결정 |
우리말이 담고 있는 세계관
우리말에는 독특한 세계관이 담겨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리"라는 말의 사용이에요. 영어의 'my'가 개인 소유를 강조한다면, 우리말의 '우리'는 공동체 의식을 표현해요.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나라'처럼 말이죠.
우리말에는 나눔과 함께함의 철학이 깊이 배어있어요. '품앗이', '두레', '계'와 같은 단어들은 함께 일하고 서로 돕는 문화를 보여주죠. 또한 우리말은 사람 중심의 인문정신을 담고 있어요. '정(情)', '한(恨)', '심성(心性)' 같은 말들은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유 방식도 우리말에 담겨있어요. 24절기와 관련된 단어들, '가랑비', '보슬비', '장대비' 같은 다양한 비의 표현은 자연과 밀접하게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세계관을 보여줘요. 이처럼 우리말은 공존과 상생의 가치관을 담고 있답니다.
말과 생각의 상호작용 메커니즘
언어는 생각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쳐요. 우리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기도 해요. 예를 들어, 우리말에는 '눈'의 종류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많아 눈에 대한 섬세한 인식이 가능해요.
우리말 사용이 우리 생각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해요. 경어체계가 발달한 우리말은 관계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형성하게 되죠. 또한 정확한 언어 사용은 명확한 사고와 직결돼요. 모호한 표현은 모호한 생각으로 이어지기 쉽거든요.
흥미로운 점은 우리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각의 한계도 있다는 거예요. 외국어에는 있지만 우리말에는 없는 개념들이 있죠. 하지만 언어는 계속 진화하고 있어요. 새로운 단어가 생기면서 우리의 생각도 확장되고 있답니다.
우리말로 표현된 감정과 의식
우리말은 미묘한 감정 표현이 정말 풍부해요. '서운하다', '아쉽다', '섭섭하다', '안타깝다' 같은 표현들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감정을 나타내죠. 외국어로는 번역하기 어려운 이런 표현들이 우리말의 깊이를 보여줘요.
계절과 시간에 따른 감정 표현도 다양해요. '가을타다', '봄날의 설렘', '여름밤의 열기'처럼 계절감을 담은 표현들이 많죠. 또한 관계성을 나타내는 고유 표현들도 풍부해요. '정들다', '미안하다', '고맙다' 같은 말들은 인간관계의 깊이를 보여줘요.
우리말 속에는 숨겨진 지혜와 통찰도 많아요. 속담이나 관용구에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죠.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표현들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교훈을 담고 있어요. 이처럼 우리말에는 우리 문화의 특수성이 깊이 반영되어 있답니다.
우리말 보존과 활용의 현실
안타깝게도 우리말은 한자어 침투로 인해 훼손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어요. 일상에서 순우리말보다 한자어나 외래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죠. 또한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말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줄임말과 신조어가 급증하고, 문법이 파괴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의 표준화가 더욱 필요해졌어요.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을 줄이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죠. 특히 청소년 세대의 우리말 감수성 교육이 절실해요. 학교에서 우리말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교육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해요.
우리말 사용의 실천적 방법론으로는 일상에서 불필요한 외래어 대신 순우리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 우리말 관련 책을 읽는 것, 바른 맞춤법을 익히는 것 등이 있어요. 작은 노력이지만 이런 실천이 모여 우리말을 지키는 힘이 될 거예요.
우리말과 글쓰기의 연결성
우리말로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는 과정이에요. 같은 내용도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죠. 문학작품에 나타난 우리말의 미학은 특히 아름다워요. 시에서의 함축적 표현, 소설에서의 묘사, 수필에서의 감성적 언어 등 우리말의 다양한 표현력이 문학을 풍요롭게 해요.
일상 글쓰기에서도 우리말 활용 전략이 중요해요. 명확하고 간결한 문장, 적절한 비유와 은유,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표현 등이 좋은 글의 요소죠. 감정 표현과 논리적 전개의 조화도 중요해요. 너무 감정에만 치우치거나 논리만 강조하면 균형 잡힌 글이 되기 어려워요.
우리말 글쓰기는 치유와 성찰의 기능도 가지고 있어요. 일기를 쓰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는 마음의 정리와 치유에 도움이 돼요. 우리말의 섬세한 표현력은 이런 치유 과정에 더욱 도움이 된답니다.
우리말 사랑의 실천과 미래 비전
일상 속에서 우리말 사용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해요. 외래어나 줄임말 대신 정확한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가정과 교육에서의 우리말 전승도 매우 중요해요. 부모가 아이에게 바른 우리말을 가르치고, 학교에서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하죠.
사회 전반에 우리말 문화를 조성하는 것도 필요해요. 공공기관의 문서, 방송 매체, 광고 등에서 불필요한 외래어 사용을 줄이고 우리말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하죠. 우리말로 표현된 삶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중요해요. 우리말 시나 소설, 노래를 통해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말의 미래 방향도 고민해야 해요. 세계화 시대에 우리말을 어떻게 보존하고 발전시킬지,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말이 어떻게 변화할지 함께 생각해봐야 할 시간이에요.
우리 언어와 사고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하여
우리말과 우리 생각의 관계는 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요. 언어가 튼튼해야 생각도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야 언어도 풍부해져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는 일이기도 해요. 일상에서 우리말의 가치를 되새기며, 다음 세대에게 아름다운 우리말을 물려주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
우리말과 우리 생각의 유형 / 서정수
우리말과 우리 한국인의 사고 유형이 관련이 깊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부 낱말의 쓰임에서도 그런 관련성이 드러나지만 문장 구조의 특성을 통하여 그 관계는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여기서는 우리의 생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몇 가지 문장 구조의 경우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미괄형 문장과 점층적 접근 의식
우리말의 어순은 다음 ⑴과 ⑵처럼 종속절이 앞에 오고 주절이 뒤에 오는 미괄형 문장 구조 유형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영어 등 인도 - 유럽어의 두괄형의 구조인 ⑶, ⑷와는 반대되는 특성이다.
⑴ 네가 나를 좋아하니까 내가 너를 좋아한다.
⑵ 내가 없는 사이에 누가 전화했니?
⑶ 내가 너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네가 나를 좋아하니까.
⑷ 누가 전화했니? 내가 없는 사이에.
곧 우리말에서는 이유, 조건 등을 나타내는 종속절이 앞에 오고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담은 주절이 뒤에 놓인다. 인도 - 유럽어에서는 주절, 곧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먼저 오고 그런 요지의 근거나 조건 등이 뒤에 오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한 문장의 어순 관계 유형은 문단이나 긴 글의 구조 유형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우리의 글에는 미괄형 문단이 많은 데 비하여 서양 글에서는 두괄형 문단이 압도적으로 많다.
땅은 우리가 발을 딛고 걸어다닐 수 있는 길과 집을 짓고 사는 터전을 마련해 준다. 푸르고 아름다운 산과 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초목과 꽃들을 선사해 주는 것도 땅이다. 그뿐이겠는가. 온갖 곡식과 과일과 채소를 가꾸어 모든 인류를 먹여 살리는 것도 알고 보면 땅이 말없이 베풀어 주는 은덕이다. 우리 인간에게만이 아니고 숱한 자연의 생명체, 하다못해 벌레 같은 미물까지도 그 가슴에 품어서 추운 겨울에도 온기를 주어 살리는 것도 땅의 미덕이다. 이처럼 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는 어머니와도 같다.
우리의 글에서는 위에서 보듯이 결론적인 서술이 맨 마지막에 나타나고 그 전에는 그 명제를 순리적으로 이끌어 내는 예비적 서술이 펼쳐지는 미괄형 문단인 경우가 많다. 이와는 달리 서구의 글에서는 결론적인 서술이 맨 앞에 놓이는 두괄형 문단 구조가 되어서 그 요지를 분명히 제시한 다음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나 설명 등을 필요한 만큼 뒤에 배열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의 미괄형 문장과 문단 구조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로, 이런 미괄형 언어 표현은 순리적인 사고 유형을 낳는다는 점이다.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부터 더 중요한 것으로 발전하여 가는 자연스런 접근 의식은 이런 미괄형 구조와 연관을 가지고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속담에서 말하는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운다.라는 의식을 뜻하는 것으로 매사에 조심성을 드러내는 접근 태도이기도 하다. 둘째로, 이런 미괄형 구조는 절정감을 형성하는 이점이 있다. 주변적인 것을 서술하면서 점차 분위기를 고조해 나가다가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것을 드러내어 절정감을 이루는 수법을 흔히 점층법이라 하는데, 우리말은 어순 자체가 절정감을 일으키는 데 안성맞춤이라 할 것이다. 셋째로, 심리적인 충격을 완화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거절이나 부정의 표현 등에서 우리는 결정적인 표현을 뒤로 미루기 때문에 충격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잘못을 지적할 때, 충고나 싫은 소리를 할 때에도 상대방의 거센 반응을 서서히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 영국의 어떤 심리학자는 거절하는 방식은 동양의 것이 심리학적으로 더 낫다고 지적한 일이 있는데, 이는 우리말을 비롯한 동양어의 우회적 어순과 관련되는 것이다. 넷째로, 대화의 내용을 끝까지 경청하는 태도를 길러 준다. 곧, 중요한 내용이 끝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기대하면서 남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요지를 파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2 생략 문장과 점의 논리
우리말은 필요한 말만 나타내고 웬만한 말은 생략해 버리는 특성이 있다. 주어니 서술어니 하는 요소를 다 갖추지 않고 상황에 따라 꼭 있어야 하는 말만 써도 자연스런 문장이 되는 것이 우리말의 한 특색이다. 가령, 먹었어. 너는?, 너 알지?, 알기는 무얼 알아.와 같이 상황에 따라 아주 짧은 표현을 해도 무방하다. 문장의 형식을 갖추게 되면 오히려 어색한 경우도 있다. 가령, 다녀왔습니다.라고 하면 충분하고도 자연스런 말이 되는데, 아버지, 어머니, 복남이가 학교에 다녀왔습니다.와 같이 주어 등을 다 갖추어 말한다면 얼마나 어색하게 들리겠는가? 이런 생략 현상은 인도 - 유럽어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들 언어에서는 상황이야 어떻든 대부분 주어와 목적어 그리고 서술어를 갖추어 주기 때문이다.쪹우리말의 이런 생략 현상은 점의 논리라는 사고 유형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점의 논리란, 구정보(舊情報)는 과감히 생략하고, 신정보(新情報)만을 언급하는 표현 원리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말이나 글에서 청자나 독자가 이미 알고 있거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내용은 과감히 생략해 버리고, 청자나 독자가 모르고 있거나 알려 주어야 할 내용만을 언급함으로써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이 필요한 내용만을 언급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점의 논리는 서양말에서 볼 수 있는 선의 논리와는 대조를 이룬다. 선의 논리란, 정보 전달에 필요한 문장 성분을 모두 실현시킴으로써 문장 성분 간에 선적 연결이 이루어지도록 언급하는 표현 원리를 뜻한다. I love you.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말에서는 사랑해.라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지만, 영어의 경우 love의 주체인 I와 love의 대상인 you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주어-목적어-서술어가 다 갖추어지는 선적 연결을 보인다. 이와 같이 서양말에서는 일부의 문장 성분을 생략하는 것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지 않으므로, 점과 점이 이어져서 선을 이루는 것과 같이 문장 성분들이 논리적으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문장 구조를 이루게 된다.
다음으로 점의 논리가 가진 장점을 살펴보자. 첫째로, 점의 논리는 말의 함축미나 은근한 맛을 자아내는 근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말과 말 사이가 이어지지 않고 적절히 끊어지기 때문에 그 여백에 여운이 남고 농축이 서려서 오히려 무엇이라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죽도록 사랑하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또한 죽도록 피하는 것이 우리다. 우리의 민족성으로 알려진 은근과 끈기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의 논리와 뿌리를 같이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로, 점의 논리는 둥글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감성적 성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점이란 본시 선을 이룬다기보다는 여기 저기 흩어져서 여러 모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것이다. 셋째로, 우리 겨레가 아름다운 정서와 유다른 시적 감흥을 지닌 것도 이런 점의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산문이 선적인 것이라면 시는 언어의 절약으로 풍기는 운율과 함축미를 그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말과 우리 한국인의 사고 유형이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문장 구조의 특성을 중심으로 알아보았다.
우리말이 우리 한국인의 사고 방식을 상당 부분 결정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국어를 아끼고 사랑하는 태도를 길러 한국인의 정체성을 살려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어와 우리 문화의 관계
국어를 배우고 안다는 것은
언어에 대해 잘 알고, 언어를 잘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휘를 많이 알고 문장을 잘 구사할 줄만 알면 언어를 잘 사용하는 것이라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어휘를 예로 들어 보자. 단어를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가령, 남자란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굳이 사전을 찾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피드 퀴즈 게임에서 남자란 단어가 나오면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여자말고! 여자의 반대말!이라고 함이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남자의 사전적 의미가 정확히 무엇이냐고 물으면 딱히 답하기가 힘들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것이 여자의 상대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남자의 의미를 여자의 상대어, 곧 대등적인 관계에서 의미만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우리의 언어 현실로 볼 때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의 언어 현실을 보면, 남자니까 네가 참아라. 하는 말과 여자니까 네가 참아라. 하는 말은 그 내포1)하는 의미가 현저히 다르다. 전자가 남자는 우월한 존재이니 그만한 일은 참아야 한다.는 의미, 곧 참으면 더 좋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면, 후자는 여자는 열등한 존재이니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의미, 곧 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의 의미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이 과연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여기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를 모르고 언어를 사용하면, 한국어를 잘 아는 것이라 할 수 없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이는 마치 만원 버스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오면서 누군가가 내립시다.라고 말할 때, 그 청유형에 이끌려 따라 내리는 자에게 한국어를 안다고 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이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를 안다는 것은 적어도 이러한 언어 현실과 문화에 익숙해지고 그에 걸맞게 사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어를 배우는 까닭은
그렇다면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기만 할 뿐인가? 언어는 사회의 약속이므로 사회가 변하기 전까지는 언어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기존의 체계에 순응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없는가?
아직까지도 여교수라는 말은 있어도 남교수란 말은 없다. 여류 작가는 있어도 남류 작가는 없다. 남성 우위의 시대에서 교수나 작가는 대부분이 남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언어학에서는 이런 것을 유표화(有標化)라 한다. 친족 호칭도 그렇다. 모계의 친족 명에는 모두 외라는 표지가 따로 붙는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외 할머니라 불러야 하지만, 아버지의 어머니 곧 친할머니는 그냥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할머니를 유표화하여 친할머니라고 한다는 것은 부계 중심 사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시아버지에게 아버님이 아니라 시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 어법에는 그릇된 것이 된다.
그러나 요즘은 여류 작가란 말이 의식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라지는 추세이다. 그런데 이것이 여류 작가가 양적으로 늘어난 데 따른 결과만은 아니란 점을 고려해 볼 때, 언어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임을 알 수가 있다. 간호원이나 청소부란 명칭이 그들의 의식적 노력의 결과로 간호사, 환경 미화원으로 바뀌게 된 사실도 같은 예에 속한다. 만일 이 같은 의식적이며 의도적인 노력 일체를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돌린다면, 국어 순화 운동 역시 설자리를 잃을 것이다. 언어의 사회성이 반드시 언어의 불가역성(不可易性)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에 담긴 그리고 그 언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와 문화까지 이해하고 비판하며 창조할 수 있는 사고와 능력을 기르는 것이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는 언어와 언어 문화의 이해와 전수에만 주된 관심을 가져왔다. 물론, 그 목적도 충분히 달성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언어와 언어 문화에 대한 이해와 전수를 넘어서서 그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언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사고력을 함양하고 이를 통해 창조적인 언어 문화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있다.
우리의 언어 문화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면
언어가 문화와 긴밀한 함수 관계에 있다면, 그리고 문화는 집단의 사고가 이루어 낸 결정체라면, 언어는 집단적 사고를 반영하고, 아울러 집단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이 자명하다.
언어 문화의 정수라 불리는 시를 예로 들어 보자.
내 마음은 호수(湖水)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玉)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호수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겐 평화롭고 고요하며 안온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며, 그러기에 이 시는 많은 이들에 의해 낭만적인 연가(戀歌)로 사랑받아 왔다. 하지만 만일 이 시를 그대로 직역해 미국의 오대호 근처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들려 주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까? 그 크기가 한반도의 몇 배에 달하며, 그로 인해 조수가 일고 일기의 변화가 일어나는 그 광대한 호수에 자신을 비겨 표현한 것인즉, 이것은 호연지기를 노래한 시가 되지나 않을까? 혹은 그 넓고 거친 호수에 연인더러 조각배 타고 노를 저어 오라 하고서는, 그러면 흰 그림자를 안은 호수의 물결이 뱃전에 부서지리라 한 것인즉, 이것은 정사(情死)를 노래한 시이거나, 혹은 위협과 저주에 가까운 시가 되지는 않을까?
이처럼 언어의 함축2)이라든가 언어 미학 등 우리의 문화의 관습, 그리고 그에 따른 사상과 감정을 다른 집단에 고스란히 전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다른 민족이 우리의 독특한 정서와 생활 풍습을,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특수성을, 그것을 머리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공감하고 감동하기란 실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민족이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우리가 민족의 언어 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국어가 민족 문화 유산의 전승과 창조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우리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연결되고,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