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현 |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진
조세현(1958년~)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주부생활 일요신문사 사진기자를 거쳐 아이콘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여성 중앙, 하퍼스 바자, 인스타일, 에콜, 쎄씨, 럭셔리, 피가로 등 패션 매거진들과 전속계약으로 수많은 셀럽을 촬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 UN난민기구 자문위원,서울시 홍보대사 등 폭넓은 사회활동을 했고 중앙대학교 석좌교수와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중구문화재단 사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통령표창, 2017년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들’상을 받았다. 50여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조세현의 얼굴」, 「사진가, 사진을 말하다」, 「조세현의 사진의 모험」 등의 책을 출간했다.
대형 반사 우산 브론컬러 파라222를 펼치고 있다.
지하 창고.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여 짐이 많다고 말한다.
유명인을 찍다가 유명인이 된
서울에서 40년을 기자로 살면서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신라호텔 뒤편 남산의 성곽을 따라 올라가는 호젓한 길이 마침 늦가을 정취로 가득했다. 오른쪽으로 성곽의 돌담을 끼고 완만한 오르막길을 몇백 미터 올라가면 왼쪽에 사진가 조세현의 작업실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인들, 소위 셀럽이라 불리는 이들을 가장 많이 촬영한 인물 사진가 조세현. 우리 시대의 유명 배우와 가수, 예술인, 정치인 그리고 기업가가 그가 찍은 인물사진에 만족하여 그에게만 사진을 찍히려 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다. 그런데 셀럽 사진가로 회자 되어온 그가 2023년 봄에 중구문화재단 사장으로 취임하여 화제가 되었다. 어느새 그 자신이 문화예술계에서 셀럽이 된 것이다.
“나의 정체성은 사진가예요. 사장 자리가 가볍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의 본질을 잊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주말에는 사진을 찍어요.”
재미있는 우연이다. 2년 전에 용산구 한남동에서 지금의 중구 신당동으로 작업실을 옮겨왔는데 올봄에 중구문화재단 사장이 된 것. 중구문화재단은 충무아트센터와 8개 도서관, 3개의 문화시설을 운영하는 재단이다. 대표 시설인 충무아트센터가 공연 중심이어서 사진가에게는 의외의 자리일 수 있는데 그는 그 사연보다 먼저 지금의 작업실이 위치한 신당동에 대한 역사부터 이야기했다. 신당동은 조선시대에 무당들이 많이 모여 사는 무당촌이란 의미로 신당(神堂)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이름 신당(新堂)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즉 기가 센 동네라는 이야기다.
굳이 기가 센 그곳에 터를 잡은 그는 150평 대지에 작업실 용도로 단순하게 건물을 앉혔는데, 건물의 삼면을 둘러싼 마당에서는 서울의 동쪽부터 서쪽까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터를 본 순간, “아, 내 것이다!”라고 신호가 왔다는 그는 이 작업실이 12번째라고 말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직접 스튜디오를 꾸민 것이 다섯 번, 독립한 후에 일곱 차례 스튜디오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횡성에 작업실이 하나 더 있어 프린팅과 작품소장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신당동 작업실에 들어서면 어마어마하게 큰 브론컬러 파라222 반사판과 음질 좋은 오디오 시스템 그리고 가로가 5미터에 달하는 긴 오크 원목 테이블이 압도적이다. 작가가 10년 전에 뉴질랜드에서 거대한 이 원목을 보고 한눈에 꽂혀서 들여왔다는데 지난 5년 동안 틈틈이 거친 원목을 직접 다듬어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직접 공구를 사서 자르고 대패질하고 문지르고 칠하고 다듬어서 지금의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
“실은 이 테이블을 들여놓을 자리로 이 집을 지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이 테이블을 옮기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공력이 들었겠냐를. 이곳이 기가 세다고 말했지요? 이 집으로 이사하자마자 계속 컨디션이 안 좋고 기분도 싸한 거예요. 그런데 이사하고 2주일이 지나서 이 테이블을 들여온 후 3일간 여기에서 누워서 잠을 잤어요. 그러고 나니 평온해지더라고요.”
그는 뉴질랜드의 오크가 어떤 경로를 거쳐 그에게로 와서 그의 나무가 되고 그의 집에서 수호신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돈과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음으로써 사물을 사물 이상의 존재로 만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사진과 사람에 쏟아왔을 지난 시간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40년을 기자로 살면서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신라호텔 뒤편 남산의 성곽을 따라 올라가는 호젓한 길이 마침 늦가을 정취로 가득했다. 오른쪽으로 성곽의 돌담을 끼고 완만한 오르막길을 몇백 미터 올라가면 왼쪽에 사진가 조세현의 작업실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인들, 소위 셀럽이라 불리는 이들을 가장 많이 촬영한 인물 사진가 조세현. 우리 시대의 유명 배우와 가수, 예술인, 정치인 그리고 기업가가 그가 찍은 인물사진에 만족하여 그에게만 사진을 찍히려 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왔다. 그런데 셀럽 사진가로 회자 되어온 그가 2023년 봄에 중구문화재단 사장으로 취임하여 화제가 되었다. 어느새 그 자신이 문화예술계에서 셀럽이 된 것이다.
“나의 정체성은 사진가예요. 사장 자리가 가볍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의 본질을 잊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주말에는 사진을 찍어요.”
재미있는 우연이다. 2년 전에 용산구 한남동에서 지금의 중구 신당동으로 작업실을 옮겨왔는데 올봄에 중구문화재단 사장이 된 것. 중구문화재단은 충무아트센터와 8개 도서관, 3개의 문화시설을 운영하는 재단이다. 대표 시설인 충무아트센터가 공연 중심이어서 사진가에게는 의외의 자리일 수 있는데 그는 그 사연보다 먼저 지금의 작업실이 위치한 신당동에 대한 역사부터 이야기했다. 신당동은 조선시대에 무당들이 많이 모여 사는 무당촌이란 의미로 신당(神堂)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이름 신당(新堂)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즉 기가 센 동네라는 이야기다.
굳이 기가 센 그곳에 터를 잡은 그는 150평 대지에 작업실 용도로 단순하게 건물을 앉혔는데, 건물의 삼면을 둘러싼 마당에서는 서울의 동쪽부터 서쪽까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터를 본 순간, “아, 내 것이다!”라고 신호가 왔다는 그는 이 작업실이 12번째라고 말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직접 스튜디오를 꾸민 것이 다섯 번, 독립한 후에 일곱 차례 스튜디오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횡성에 작업실이 하나 더 있어 프린팅과 작품소장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신당동 작업실에 들어서면 어마어마하게 큰 브론컬러 파라222 반사판과 음질 좋은 오디오 시스템 그리고 가로가 5미터에 달하는 긴 오크 원목 테이블이 압도적이다. 작가가 10년 전에 뉴질랜드에서 거대한 이 원목을 보고 한눈에 꽂혀서 들여왔다는데 지난 5년 동안 틈틈이 거친 원목을 직접 다듬어 만들었다고 했다. 그가 직접 공구를 사서 자르고 대패질하고 문지르고 칠하고 다듬어서 지금의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
“실은 이 테이블을 들여놓을 자리로 이 집을 지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이 테이블을 옮기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공력이 들었겠냐를. 이곳이 기가 세다고 말했지요? 이 집으로 이사하자마자 계속 컨디션이 안 좋고 기분도 싸한 거예요. 그런데 이사하고 2주일이 지나서 이 테이블을 들여온 후 3일간 여기에서 누워서 잠을 잤어요. 그러고 나니 평온해지더라고요.”
그는 뉴질랜드의 오크가 어떤 경로를 거쳐 그에게로 와서 그의 나무가 되고 그의 집에서 수호신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돈과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음으로써 사물을 사물 이상의 존재로 만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사진과 사람에 쏟아왔을 지난 시간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사진으로 맺은 숱한 인연
“나는 아직도 사진이 너무 재밌다”는 조세현 작가는 40년 이상을 사진가로 살아왔다. 중학생일 때 필름을 처음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고등학교에 들어와 사진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사진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발군의 실력을 보이기 시작한 그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했고 미친 듯이 사진에 빠져들었다. 졸업 후 1980년대 초에 잡지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인물과 패션사진에 몰두하게 되고 그런 경험이 그의 타고난 감각과 결합하면서 조세현을 유명한 광고사진가로 만들었다.
특히 그는 인물사진에서 그 사람이 가진 개성적인 요소를 돋보이게 하는 남다른 능력을 타고났다. 모델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을 끌어내는 역량이 인물사진의 성패를 가름한다. 그러나 각자에게 내재한 매력을 끌어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가 본인이 스스로 드러내도록 유도해 가장 극적인 순간을 잡아내는 것, 자신조차 잘 모르던 자신의 매력을 발견하게 해주면 조세현의 스튜디오를 또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유명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을 찍으면서 각별한 관계가 된 사람들도 참 많아요. 사진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 셈이죠.”
예리한 시선으로 상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의 카메라 앞에 서게 함으로써 일약 스타로 만든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선거 포스터 사진으로 당선에 도움이 되었다면서 선거철마다 찾아오는 정치인들도 꽤 있다고 한다. 사진을 통해 각계각층의 스타와 만나게 되고 그들을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그 자신도 귀한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할까. 특히 그는 입양아 촬영과 전시, 노숙인들에게 사진을 가르쳐주는 일, 해외 소수민족 촬영 등 화려한 셀럽과 대조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그의 재능을 기부함으로써 사진을 통해 조금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빛의 예술인 사진을 통해 그늘 속 사람을 빛의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일, 즉 모두를 빛나게 하는 일을 실행해왔다.
“나는 아직도 사진이 너무 재밌다”는 조세현 작가는 40년 이상을 사진가로 살아왔다. 중학생일 때 필름을 처음 접한 것이 계기가 되어 고등학교에 들어와 사진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사진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발군의 실력을 보이기 시작한 그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했고 미친 듯이 사진에 빠져들었다. 졸업 후 1980년대 초에 잡지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인물과 패션사진에 몰두하게 되고 그런 경험이 그의 타고난 감각과 결합하면서 조세현을 유명한 광고사진가로 만들었다.
특히 그는 인물사진에서 그 사람이 가진 개성적인 요소를 돋보이게 하는 남다른 능력을 타고났다. 모델이 가진 저마다의 개성을 끌어내는 역량이 인물사진의 성패를 가름한다. 그러나 각자에게 내재한 매력을 끌어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가 본인이 스스로 드러내도록 유도해 가장 극적인 순간을 잡아내는 것, 자신조차 잘 모르던 자신의 매력을 발견하게 해주면 조세현의 스튜디오를 또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유명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을 찍으면서 각별한 관계가 된 사람들도 참 많아요. 사진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 셈이죠.”
예리한 시선으로 상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의 카메라 앞에 서게 함으로써 일약 스타로 만든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선거 포스터 사진으로 당선에 도움이 되었다면서 선거철마다 찾아오는 정치인들도 꽤 있다고 한다. 사진을 통해 각계각층의 스타와 만나게 되고 그들을 성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줌으로써 그 자신도 귀한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할까. 특히 그는 입양아 촬영과 전시, 노숙인들에게 사진을 가르쳐주는 일, 해외 소수민족 촬영 등 화려한 셀럽과 대조적인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도 공평하게 그의 재능을 기부함으로써 사진을 통해 조금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빛의 예술인 사진을 통해 그늘 속 사람을 빛의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일, 즉 모두를 빛나게 하는 일을 실행해왔다.
그런 활동으로 인해 사진가 조세현에게 여러 직책이 주어졌다.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이사장,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 UN 난민기구 자문위원,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사, 2018 평창올림픽 홍보대사, 패럴림픽 공식 사진작가, 서울시 홍보대사 등 그에게 주어진 다양한 직책은 사진을 통한 그의 행동반경이 얼마나 넓은가를 대변해준다. 이런 폭넓은 활동이 2023년 봄에는 중구문화재단 사장으로 이어졌다.
“아니, 사진가 출신이?”라는 물음표는 취임 이후 서서히 풀리고 있다. 지난 8대 사장까지 공연계 출신들이 차지한 자리여서 시각예술 분야의 사장에게 의문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지만 2023년을 넘기기도 전에 충무아트센터부터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사진가 출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죠. 그래서 나를 부른 것일 테고, 내가 열심히 잘해야 다음에도 사진가 출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겠어요? 후배들에게 길이 되기 위해 이 직책을 맡았습니다.”
충무아트센터는 복합공간이므로 공연장과 전시기능을 갖추었는데 이번에 기존의 70평 전시실을 300평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100평 규모의 전시실 3개를 만들어 각각의 전시장으로 또는 하나의 대형전시장으로 유연하게 운영할 계획인데 2024년 봄에 기후환경을 주제로 한 국제전을 연다. 또한 그 전초전으로 기후환경을 주제로 한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사진의 힘’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조세현 작가가 앞으로 사진을 통하여 무엇을 해나갈 것인지 주목되는 이유다.
“복합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준비로 11월에 직원들과 영국 견학을 다녀왔어요. 겉핥기 견학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방문할 바비칸(Barbican)아트센터, 사우스뱅크아트센터 등에 대한 조사를 충분하게 해서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슨 질문을 할 것인가, 철저히 준비하고 떠나도록 했어요.”
“아니, 사진가 출신이?”라는 물음표는 취임 이후 서서히 풀리고 있다. 지난 8대 사장까지 공연계 출신들이 차지한 자리여서 시각예술 분야의 사장에게 의문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지만 2023년을 넘기기도 전에 충무아트센터부터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사진가 출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죠. 그래서 나를 부른 것일 테고, 내가 열심히 잘해야 다음에도 사진가 출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겠어요? 후배들에게 길이 되기 위해 이 직책을 맡았습니다.”
충무아트센터는 복합공간이므로 공연장과 전시기능을 갖추었는데 이번에 기존의 70평 전시실을 300평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100평 규모의 전시실 3개를 만들어 각각의 전시장으로 또는 하나의 대형전시장으로 유연하게 운영할 계획인데 2024년 봄에 기후환경을 주제로 한 국제전을 연다. 또한 그 전초전으로 기후환경을 주제로 한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사진의 힘’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조세현 작가가 앞으로 사진을 통하여 무엇을 해나갈 것인지 주목되는 이유다.
“복합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준비로 11월에 직원들과 영국 견학을 다녀왔어요. 겉핥기 견학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방문할 바비칸(Barbican)아트센터, 사우스뱅크아트센터 등에 대한 조사를 충분하게 해서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슨 질문을 할 것인가, 철저히 준비하고 떠나도록 했어요.”
그가 잡지사에 근무할 때나 그의 스튜디오 아이콘(ICON)을 운영할 때나 그는 엄격한 선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그가 해마다 자신을 도와서 일한 후배들과 모임을 하면 20명 이상이 모인다고 했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독립한 후배들 가운데 80%가 성공했다는 것에서도 그가 일하는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뉴질랜드에 촬영을 갔다가 경매로 산 오크 원목을 들여와 직접 깎고 다듬어 길이 5m의 거대한 탁자를 만들었다. 그가 가장 애정하는 탁자 앞에서.
사진의 영역 확장
그는 우리 사회에서 사진의 영역이 좁은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사진가들이 조금 더 사회성을 갖고 폭넓게 바라보고 타분야와 섞이고 사진가의 활동 범위를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가의 환경을 좋게 만들기 위해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타 분야와 협업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4년에 서울 창동에 개관할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시작된 것도 조세현 작가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시 홍보대사로서 사진을 통한 나눔과 봉사활동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것. 지금은 경기도 김동연 지사와 인연을 계기로 경기도 도립사진미술관을 추진 중이다. 과거 수원농대 자리에 사진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립과 도립이 있으면 국립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항상 큰 그림을 그린다. 어려서부터 그는 늘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방법을 연구했고 노력했다. 그는 최고의 사진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뤘고 돈도 많이 벌어야겠다는 꿈도 이룬 것 같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돈이 있어야 나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어요.” 그리고 사진을 통하여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고 싶다는 목표도 실행 중이다. 그는 그런 일을 이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인연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그는 우리 사회에서 사진의 영역이 좁은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사진가들이 조금 더 사회성을 갖고 폭넓게 바라보고 타분야와 섞이고 사진가의 활동 범위를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가의 환경을 좋게 만들기 위해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타 분야와 협업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4년에 서울 창동에 개관할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시작된 것도 조세현 작가가 박원순 서울시장과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시 홍보대사로서 사진을 통한 나눔과 봉사활동을 많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준 것. 지금은 경기도 김동연 지사와 인연을 계기로 경기도 도립사진미술관을 추진 중이다. 과거 수원농대 자리에 사진 복합문화공간이 들어설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시립과 도립이 있으면 국립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항상 큰 그림을 그린다. 어려서부터 그는 늘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방법을 연구했고 노력했다. 그는 최고의 사진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뤘고 돈도 많이 벌어야겠다는 꿈도 이룬 것 같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돈이 있어야 나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어요.” 그리고 사진을 통하여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고 싶다는 목표도 실행 중이다. 그는 그런 일을 이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인연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요즘 커피를 조제하고 내리는 취미에 푹 빠진 조세현 작가가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있다. 가장 편안한 휴식 시간이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동력은 사람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40년 넘게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그 긴 세월 동안에 그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 그들과 얽혔다는 뜻이지요.”
사진의 역사는 사실 인물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카메라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가장 욕망했던 것이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는 일이었다. 그림이 도맡았던 일을 사진이 대신하게 되면서 사진과 사람은 필연적인 관계가 되었다. 사진은 때때로 내가 잘 모르던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을 찍으면서 “너 왼쪽 눈이 좀 작구나!” 같은 말을 하면 상대방은 오히려 신뢰를 보낸다고 했다. 이렇게 세심하게 나를 발견해주니 나의 단점을 잘 커버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신뢰하면 사진이 잘 나오기 마련이다. ‘작은 음악회’의 노영심은 10년 동안 그에게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찍는 날 아침에는 기대가 생겨요.”라고 말할 정도다. 물론 그는 상대의 신뢰에서 생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담아낸다. 결국 사진가와 대상 인물 사이의 신뢰가 좋은 사진을 만들 뿐 아니라 신뢰하는 인간관계로 발전하여 오늘의 사진가 조세현, 문화예술계의 셀럽 조세현을 만든 것이다. 결국 사람이고, 항상 사람이다.
사진의 역사는 사실 인물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카메라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가장 욕망했던 것이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는 일이었다. 그림이 도맡았던 일을 사진이 대신하게 되면서 사진과 사람은 필연적인 관계가 되었다. 사진은 때때로 내가 잘 모르던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을 찍으면서 “너 왼쪽 눈이 좀 작구나!” 같은 말을 하면 상대방은 오히려 신뢰를 보낸다고 했다. 이렇게 세심하게 나를 발견해주니 나의 단점을 잘 커버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신뢰하면 사진이 잘 나오기 마련이다. ‘작은 음악회’의 노영심은 10년 동안 그에게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 찍는 날 아침에는 기대가 생겨요.”라고 말할 정도다. 물론 그는 상대의 신뢰에서 생기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담아낸다. 결국 사진가와 대상 인물 사이의 신뢰가 좋은 사진을 만들 뿐 아니라 신뢰하는 인간관계로 발전하여 오늘의 사진가 조세현, 문화예술계의 셀럽 조세현을 만든 것이다. 결국 사람이고, 항상 사람이다.
글 윤세영 편집주간
해당 기사는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Tags
綜合資料保管倉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