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毛澤東瓷器'의 진위감정

 '毛澤東瓷器'의 진위감정

白瓷主席雕像塑像擺像澤東像瓷像半身像頭像偉人

유니갤러리

중국의 수장가들에게는 결국에 자신의 수장품이 한 벌이 갖추어지기를 희망하는 하나의 습관이 있다. 실제로 '모자(毛瓷-모택동자기)'를 수장함에 있어 한 벌을 구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 벌의 완전한 '모자毛瓷'가 얼마나 되는지, 포괄하고 있는 품종이 얼마나 되는지에 관한 기본적인 숫자는 '모자'의 작자들조차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으로서, 사람마다 설이 분분하며 근거로 할 만한 기록도 없다. 또한 그 당시에 도자연구소에서 중앙으로 제작하여 보낸 자기의 반출수와 자료의 절대적인 부분이 이미 유실되었다. 현재 말하는 '벌(중국어로 투套)'이라는 것은 모두가 판매자들이 판매하기 위하여 지어낸 황당무계한 말에 불과하다.

수집가들에게 기물은 드물어야 진귀하게 여겨진다. '모자'를 역대의 관요와 비교하여 보자. 역대의 관요는 많이 없어져 버렸지만, 건륭관요의 경우를 볼 경우에 건륭의 재위기간은 60여년에 달하였으며 어기창에서는 건륭황제를 위하여 60여년간 자기를 제작하였다. 게다가 '관탑민소(官搭民燒-관부에서 민요에 하청을 주어 제작시킴)'라는 제도를 실시하여, 해마다 수만에서 십만 건의 자기가 제작되었으므로, 현재에 와서 건륭관요의 전세량은 계산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모자毛瓷'의 소성에는 용적이 4입방미터에 달하며 기술적으로 개조하여 고온을 견딜 수 있는 도연요倒燃窯를 사용하였다. 당시 관련인사들의 말에 근거하면 시험제작을 포함하여 전후에 걸쳐 모두 17차례를 소성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4입방미터의 도연요에서는 평균 한 번에 도자기로 된 찬구饌具를 4-5백건 구워낼 수 있으며, '모자毛瓷'인 찬구는 대부분 뚜껑이 있었으므로 한 번에 3백건 정도를 구워냈을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폐품, 잔품殘品, 열등품 및 가채加彩하지 않은 반제품半製品을 포함하여 총 생산량은 5,000건을 넘지 않을 것이다.

황만개黃萬凱선생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에 창고에 입고된 완성품은 2,000건 정도이었으며, 그 나머지로는 상당한 수량의 채회하지 않은 백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모자毛瓷'의 수량이 전해오는 건륭관요자기보다 훨씬 적으므로 가치상승력을 많이 가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과거에는 수장가들의 주목을 받지 않았으므로, '모자毛瓷'에 관하여 알고 있었던 사람이 매우 적었다. 그러나 관련자료의 끊임없는 공개로 말미암아 '모자'는 이미 수장계의 총아가 되었다.

'모자毛瓷'가격의 급격한 반등에 따라 진위감별도 수장계의 광범위한 주의를 끌게 되었다. 현재 시장에 돌아다니는 '모자毛瓷'의 절대다수는 모두 가짜이다. 심지어 일부 모조품은 판매될 때 제작자 개인이 발행한 감정증서를 첨부시켜 더욱 커다란 사기성을 갖기도 한다. 조사에 따르면 시중의 가짜 '모자毛瓷'는 주로 다음의 세 종류이다.

1.경공업부도자연구소에서 생산한 여타의 도자기를 '모자'로 둔갑시킨 것

그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예는 '7801'을 '7501'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소위 '7801'은 1978년 화국봉華國鋒이 정권을 잡았을 때 도자연구소에서 기본적으로 '7501'에 근거하여 중남해中南海를 위하여 제작한 도자기를 가리킨다. 엄격하게 말해 이 것은 '7801화주석용자기華主席用瓷器'라고 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는 일부 품종의 조형이 '7501'과 확연히 다른 점을 제외하고 채회도안이 '모자'와 극히 유사하여 비전문가는 감정하기 어렵다. 특히 그 태토는 '7501'에 사용하고 남은 원료를 사용하였으므로 '모자毛瓷'와 완전히 일치한다.

'모자毛瓷'가 세상에 나타난 뒤에 각 성省과 시市의 지도자들이 이를 선호하자, 상부上部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도자연구소에서 '7801'을 제작하면서 의도적으로 추가생산을 하였다. 그 후에 잉여제품을 예물禮物로 삼아 각급 지도자들에게 증정하였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7801'의 보존량이 '7501'보다 월등히 많다.

1982년 설날 전날에 도자연구소에서는 소량의 '7501'과 대량의 '7801'을 뒤섞어서 연구소의 직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당시 연구소내에서 '7501'과 '7801'의 두 차례에 걸친 제작과정에 참여하였던 극소수의 고급기술자들만이 이 두 종류의 제품을 구분할 수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기타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두 두 제품을 구별하지 못하였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연구소내의 대부분의 직공들은 당시 자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자기가 모두 '모자毛瓷'라고 여기고 있다.

'7501'과 '7801'의 구분은 두 방면에서 진행해야 한다.

1) 제품의 품종에서 착수. 예를 들면, 사람들이 경매장에서 보는 담우痰盂, 대형차배大型茶杯, 원형의 재떨이, 주구酒具 등은 모두 '7801'의 제품으로서 '모자毛瓷'에는 이러한 품종이 없다.

2) 일부 품종은 '7501'과 '7801'에서 모두 생산하여 구분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채색도안을 비교분석해 보아야 한다. 우선 '7501'의 화공畵工은 근엄하고 세밀하지만 '7801'의 화공은 거칠다.

그 다음으로 양자의 화법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2호유하채차완號釉下彩茶碗의 경우에는 매화도안梅花圖案 가운데에서 좌로 향하여 뻗은 매화가지가 교차되어 그려져 있는데, '7501'은 위를 향하여 수필收筆하고 '7801'은 아래를 향하여 수필하여 비교적 뚜렷하게 구별된다. 또한 '모자毛瓷' 가운데 유하채쌍면회부용화완釉下彩雙面繪芙蓉花碗과 백색의 선으로 꽃송이를 구륵鉤勒하여 그린 매화기법은 '7801'에서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으며, '7501'의 채색안료도 '7801'보다 엄선하였으므로 , 세밀도와 선명도에서 '7501'이 '7801'보다 우수하다.

2.'7501'을 제작할 때 남은 백자를 이용하여 '후가채後加彩'를 한 것.

이러한 모조품은 모두 유상채釉上彩제품이다. 유상채제품은 '고온유소(高溫釉燒-고온에서 유약을 칠한 자기를 소성)'와 '저온채소(低溫彩燒-저온에서 채색한 안료를 소성)'의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첫단계의 '고온유소'를 완성한 뒤에 반드시 그 가운데에서 품질에 문제가 있는 백자를 골라낸 뒤에 채회彩繪를 진행하게 된다. '모자毛瓷'의 품질에 대한 기준은 극히 엄격하여 국가의 품질표준에 따라 특급과 일급에 해당하는 백자만을 선택하여 채회과정에 사용하였으며, 그 나머지는 전부 도태시켰다.

도태된 백자는 최초에 입고시켜 보관하였다가 후에는 연구소내의 직공들에게 계속하여 나누어 주었다. 이 제품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사람을 초빙하여 '7501'을 모방제작 하기도 하였다. 비록 그 가운데에 '전문가'의 손에서 아주 그럴 듯하게 되어진 소수의 제품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지만, 절대다수는 진품과 거리가 멀어, 화공이 서투르거나 구도가 어긋나거나 수법이 졸렬하거나 색채가 정확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기를 감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흑점黑点(철점鐵点), 침공針孔, 축유縮釉, 흘연(吃煙-연기에 그을린 자욱), 변형, 귤유橘釉 등처럼 백자에 결함이 있는 것은 모두 모조품으로서, 절대다수의 모조품에는 백자에 정도가 서로 다른 결함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일부 모조품은 백자의 결점을 은폐하기 위하여 채회과정에서 고의로 복숭아나무가지의 도안을 이용하기도 하므로 자세히 관찰해야 발견할 수가 있다.

3. 개인공방의 신모조품

최근에 경제개혁의 끊임없는 가속화로 경덕진의 10대 국영도자창이 엄중한 손실을 입어 채무를 갚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심지어 '모자毛瓷'를 제작하여 명성이 자자하였던 경공업부도자연구소도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여 많은 직공들을 하강下崗시켰다. 일부 사영도자공장에서 '모자'가 가진 높은 가치와 막대한 이익에 눈을 돌려 적극적으로 인재를 모집하여 모조품의 제작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신모조품의 제작수준은 진품에 비하여 비교적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여 태질, 조형, 색채, 화공이 모두 '7801'에도 미치지 못하므로, 눈 밝은 사람은 한눈에 간파할 수 있다.

'수점매화水点梅花' 차배茶杯를 예로 살펴본다. 우선 매화도안의 색채가 진품은 선염鮮艶하고 모조품은 암담暗澹하다. 이것은 주로 채회안료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진품은 독일에서 수입한 금홍료金紅料를 주원료로 하였으나, 모조품은 중국산 안료를 사용하였다. 그 다음에 잔 뚜껑의 조형이 진품과 틀리다. 진품의 조형은 고심하여 제작하여 날씬하고 단정하다. 모조품의 조형은 극히 연약하고 힘이 없으며 제조공예도 서투르다.

실물을 본다면 파탄이 더 많이 드러난다. 원래의 태질이 상이하여 광선에 비추어 보면 진품의 굽 주위에서 기벽이 비교적 두터운 부위는 취록색翠綠色을 띠지만 모조품은 암홍색暗紅色을 띤다. 이 점은 모조품의 소성온도와 자화瓷化정도가 진품에 미치지 못함을 설명하는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 모조품에 사용된 도자원료가 진품과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 원인은 임천臨川고령토의 산출이 이미 중단되어 기타 원료로 대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조품에 사용한 태토의 물리화학적표준을 임천고령토와 완전히 일치하도록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모조품에 사용된 자토瓷土의 성능이 임천고령토에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소성과 내고온성에 차이가 발생하였으므로, 모조품은 쉽게 변형되지 않도록 기벽이 비교적 두텁거나 주장성형한 품종이 대부분으로서 차배茶杯, 탕작(湯勺-국수저), 반작(飯勺-밥수저), 담배함, 재털이, 장유호醬油壺, 필통, 수저통, 호초분병胡椒粉甁, 술잔, 술단지, 담우痰盂, 과반果盤 등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모자'라는 특정시기의 산물은 현재 20여년의 역사밖에 없으나 모조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모자毛瓷'의 수량이 비록 적지만 모든 '모자毛瓷'가 모두 가치가 아주 높은 것이 아니라 품질에 따라 가치를 결정해야 하므로 '모자毛瓷'도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진다.

종합하자면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은 중남해中南海로 반입된 제품이다. 이 제품은 품질면에서 흠 잡을 것이 없으며 모두 특급품으로 품종도 가장 완전하다. 당연히 이러한 '모자毛瓷'는 국가의 소유로서 유통되기 아주 어렵다.

그 다음은 1989년에 북경 공예예술품전람회에 참가하였던 제품들로 상등품에 속하는 것이다. 원래의 도자연구소의 전시실에도 20여 건의 품질이 양호한 유하채제품이 있으나 판매하지 않는 것이다.

민간에 흩어진 '모자毛瓷'는 일부제품의 품질이 우수하지만 경공업부의 품질등급표준에 따르면 2-4급에 속하는 제품이다. 또한 일부분의 등외품과 손상품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모자毛瓷'의 수장가치는 자연히 한 등급 떨어진다.

구체적인 품종으로 말하자면 가장 가치가 높은 제품은 당연히 유하채釉下彩 쌍면채회부용완雙面彩繪芙蓉碗으로 절대무쌍의 예술극품이다.

그 다음은 제작기법이 복잡하고 제작수량이 적은 제품으로 문방구에 속하는 비각 등이다.

유상채釉上彩제품은 합격률이 낮아 제작수량이 유하채釉下彩제품보다 더 적으므로 상대적으로 진귀하다.

Sold at Auction: 文革瓷毛澤東和林彪像茶具一套A Tea Set Portraying


중국의 소장가들은 반보(飯보-밥솥), 품과品鍋, 초호醋壺, 장유호醬油壺 등의 '입건立件'제품을 좋아하고 일본인들은 완碗을 특히 좋아하여 선호하는 바가 다르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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