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채, 분채, 광채의 구별

오채, 분채, 광채의 구별
 
나비와 식물 무늬의 오채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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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채와 분채 및 광채자기(광주채회廣州彩繪 또는 광주직금채자廣州織金彩瓷의 간칭)는 모두 유면 위에 여러 종류의 채색안료를 이용하여 문양을 그리고 저온에서 이차소성二次燒成한 품종이며, 채색안료의 색은 홍색, 녹색, 남색, 황색, 자색 등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장기간에 걸쳐 오채라는 명칭으로 통칭되었다.

청대(1644-1911) 초중기의 문헌 가운데에는 오채에 관한 기록을 제외하고 분채와 광채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건륭연간(1736-1795)에 편찬된 주염朱琰의 <도설陶說>에서도 다음과 같이 양채洋彩 만을 언급하였다 :
“고대자기 가운데 오채는 成化시기의 제품이 가장 우수하여 생동하는 화면은 화가의 그림보다 뛰어났으며 , 화공의 수준이 본래부터 우수하였고 안료도 정련되었다. 현대에 증가된 양채洋彩는 현란하여 눈길을 빼앗는다古瓷五彩, 成窯爲最, 俱点染生動, 有出于丹靑家之上者, 畵手固高, 畵料亦精, 今增洋彩一種, 絢麗奪目.”
위 문장에서는 건륭시기에 ‘양채'가 이미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주염이 말한 ‘양채'는 그 당시의 분채나 광채를 가리킬 가능성이 있다.

또 가경연간(1796-1820)에 저술된 <경덕진도록景德鎭陶錄>에서는 분채와 광채를 언급하지 않았으나 “제작한 것 가운데 대개 서양자기를 모방하여 소성한 것은 옛날 광동성 양강현陽江縣의 지운창志雲廠에서 생산한 자기로서 향로, 병, 접시, 쟁반, 호, 합 종류의 기물이 있었으며, 색채가 현란하고 화려하였다.”라고 ‘광요廣窯'를 언급하였다.
이 기록의 내용은 광채를 가리키는 것으로 석만요자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석만요자기에는 가채(加彩-유상채를 칠함)한 기물이 매우 적으며, 현재까지 청대이전에 제작되었으면서 현란하고 화려한 석만요자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말에 이르러, 일부 도자기에 관한 저술에서 분채와 광채를 언급하였으나 애매모호하였다. 예를 들면 광서연간(1875-1908)에 저술된 <도아陶雅>에서 ‘분채'라는 명칭이 나타났으나 ‘광채'에 대하여는 여전히 광요와 혼동하였다.

민국(1912-1949)초기에 이르러 일부 도자서에서 분채와 광채를 오채에서 분리하기 시작하였으므로, 오채와 분채 및 광채의 구별에 대하여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오채>
오채는 당대唐代 유상홍록채釉上紅綠彩의 기초 위에서 발전하여 탄생되었다.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명明 선덕년간宣德年間에 이미 오채자기가 생산되었다. 그러나 명대의 유상채釉上彩는 대부분 홍색, 녹색, 황색이 위주로서 유하청화釉下靑花와 서로 배합되었으며 순수한 오채는 비교적 적다. 강희시기에는 또 유상釉上의 남채藍彩(이후 유하釉下 청화를 대체하게 됨)와 흑채黑彩가 발명되어 색채가 더욱 현란하고 다채로워졌으며, 강희오채를 등봉조극登峰造極의 경지에 도달시켰다.

<분채>
분채의 출현은 비교적 늦다. 분채는 청대 강희오채의 기초 위에서 법랑채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창조된 유상채釉上彩이다. 창조시기는 일반적으로 강희중만기로 간주되고 있다. 분채는 옹정시기에 이르러 성숙되고 대량으로 제작되어 마침내 오채를 대체하였다.
채색안료에 연분(鉛粉-납성분)이 함유되어 있으며, 문양을 그릴 때 유면에 파리백(파璃白-무색투명한 유리분말)을 칠하고 분수담세법(分水淡洗法-수묵화를 그리듯이 농담을 조절)을 이용하여 색채의 농염한 정도를 약화시켜서, 색계色階가 비교적 다양하며 색조가 부드럽고 입체감이 강하므로 당연히 오채보다 우수하여 현재까지 성행하고 있다.

<오채와 분채의 차이>
오채와 분채는 안료에도 차이가 존재하였다. <음류재설자飮流齋說瓷>에는 “강희시기는 경채硬彩이고 옹정시기는 연채軟彩이다 . 경채는 색채가 매우 진하며 유면釉面 위에 채색되어 약간 볼록하다. 연채는 또 분채라고 하는데 색채가 조금 진하고 분질감粉質感이 있으며 균일하다. 경채는 화려하면서 깊이 가라앉은 느낌이며(硬彩華貴而深凝),분채는 염려하면서 경쾌한 느낌이다(粉彩艶麗而逸).” 라고 기록되어 있다 .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에 <중국의 자기中國的瓷器>라는 서적에서 오채와 분채를 명쾌하게 구별하였다.

첫째, 기법면에서 오채는 단선평도(單線平塗-단선으로 균일하게 칠하는 기법)이며 분채는 몰골화법沒骨畵法에 기본을 두고 있다.

둘째, 안료면에서 분채에서는 오채의 안료를 계속 사용한 이외에도 연지홍, 강홍羌紅, 양록洋綠, 양황洋黃, 양백洋白 등의 몇 가지 안료를 창조하였다.

<광채>
‘광채' 도 경덕진에서 기원하여 강희연간에 시작되어 옹정시기에 자신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하였으며 , 건륭과 가경시기에 비로소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주로 수출되었으며 민간에서 일부 사용되었다.

<죽원도설竹園陶說>에서는 “청대중기에 선박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상업이 번성하였으며, 유럽에서 중국자기를 중요시하게 되었다. 중국의 상인들이 유럽인들의 기호에 맞추어 경덕진에서 백자를 제작하여 광동성廣東省으로 운반하여 화공들을 고용해서 서양화법에 따라 이 백자에 그림을 그렸으며, 광주廣州부근 주강珠江의 남부에 가마를 만들어 소성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채색자기는 서양의 상인들에게 판매되었다. 백자는 경덕진에서 구입하고 채회는 광동성의 하남창河南廠에서 한 기물이다.” 라고 광채의 특징을 명확하게 설명하였다.

송량벽宋良璧의 <광채와 수출廣彩與外銷>이라는 책에 “광채자기의 생산은 그 시작이 수출자기와 관련이 있으며, 문양도 외국상인의 수요와 기호에 응하여 그려졌으나, 점차 독특한 예술자기로 발전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광채자기는 대부분 서양풍격과 중국의 전통적인 제재가 서로 결합된 조형과 문양을 가지고 있으며, 관지款識가 없다. 예를 들면, 기물의 테두리를 장식한 꽃문양에 서양 바로크풍격의 장미꽃 등을 첨가하였으며, 이밖에 풍경, 인물, 표기標記, 문장紋章 등도 사용되었다.

광채는 오채와 분채 및 법랑채 등의 채회풍격을 흡수하고 유럽예술의 정화도 흡수하여 비로소 성공적으로 발전하여 광채가 되었다. 그 특징은 화려하고 현란하며, 금빛이 찬란하고 선명하며, 구도가 풍만하여 문양이 가득하지만 문란하지 않다는 점이다. 마치 수만 가닥의 금실로 짜 놓은 듯이 아름다워 ‘직금채자織金彩瓷' 라고 부르기도 한다.

광채의 제작초기에는 도공들이 경덕진에서 건너왔으며, 전통적인 오채와 새로 창조한 분채 및 법랑채의 기법과 채색안료를 광채가 흡수하였으므로, 상호 영향을 미쳤지만 그 차이도 명확하다.

<광채의 유색>
광채자기 색깔의 특징은 경덕진에서 가져온 일부의 원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안료를 광주廣州에서 제조하거나 개량하였다는 점이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가 있다.

- 하나, 수청水靑으로 비교적 반짝거리는 남청색藍靑色이며 청화의 발색과 유사하다.

- 둘, 서홍西紅으로 경덕진의 연지홍과 유사하다. 그러나 광채의 서홍은 얇고 균일하지만, 경덕진의 연지홍은 비교적 두텁다.

- 셋, 대홍大紅으로 반홍磻紅과 유사하지만 반홍보다 옅고 선명하다.

- 넷, 대록大綠으로 경덕진의 대록보다 조금 푸르고 황색이 은은하면서 밝게 반짝인다.

- 다섯, 마색麻色으로 황마黃麻 껍질의 색과 유사하지만 조금 진하고 반짝이며, 서양과 관련된 제재를 그릴 경우에 자주 사용되는 색채의 일종이다. 광채에서는 이 색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경덕진의 오채 및 분채에서는 이 색을 적게 사용하였다.

- 여섯, 광채에서는 금채金彩를 즐겨 사용하여 금빛이 찬란하지만, 오채와 분채에서는 금채를 적게 사용하였다. 일곱, 가색茄色으로 서홍과 수청을 배합하여 만들며, 자색빛이지만 경덕진의 가자색茄紫色보다 농염하다.

광채는 문양의 구도면에서 오채와 분채 등의 정화를 흡수하고, 수출수요에 맞추기 위하여 외국상인의 요구를 많이 고려하였다. 또 서양의 예술형식을 모방하여 도안의 장식성이 강하고 금채가 많이 사용되었으며, 색의 대비가 강렬한 대홍과 대록 등을 많이 사용한 것처럼 서양의 회화기법을 많이 흡수하였다.

광채의 제재는 화조花鳥, 충어蟲魚, 인물고사人物故事, 산수山水, 방고倣古 등처럼 매우 광범위하다. 화공들은 기형에 따라 상이한 구도에 맞추어 장식하였으며, 대부분 만지개광(滿地開光-기물 전체를 개광으로 장식. 광채에서는 '투방鬪方' 이라 한다 )이다. 일반적인 양식은 테두리와 개광 및 바탕으로 구성되며 주제가 되는 내용을 중앙에 배치하여 층차가 분명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이 점도 화면구성이라는 면에서 광채의 한 특징이다.

광채자기의 시대적인 특성을 감정하려면, 기형과 태토와 유약 이외에 색채를 관찰해야 한다. 강희시기에는 홍록채紅綠彩가 주이다. 옹정시기에는 홍색, 녹색, 황색, 자색, 설청색雪靑色 등이 나타난다. 건륭과 가경시기에는 대량으로 금색金色과 황색黃色을 사용하였다. 도광이후에는 황채黃彩와 금채金彩가 주이다.
용 무늬가 인상적인 두채 /flickr

광채나 불산佛山의 석만요石灣窯를 ‘광요廣窯' 라고 칭하며 양자를 혼용한 문헌이 많다. 지금도 여전히 ‘광채' 나 석만요를 ‘광요' 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광채' 와 석만요는 모두 ‘광요' 라고 칭해서는 않된다. 광동성에는 필가산요筆架山窯, 광주의 서촌요西村窯, 해강요海康窯 등처럼 저명한 도요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광채는 더욱 더 광요라고 칭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백자는 대부분 경덕진에서 구입해왔으며, 광주에서는 여기에 채색만 했을 뿐이므로 ‘광채' 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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