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國瓷器의 감정

民國瓷器의 감정

민국시기(1911-1949)의 자기생산은 수량과 질량면에서 모두 이전시기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다. 거시적인 면에서 보면, 1840년(도광道光 20년)의 아편전쟁 이후 중국사회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여, 도자업도 기타 경제문화처럼 국력의 쇠퇴에 따라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므로 자기생산에서 어떤 발전이나 창조가 없이 도리어 날로 쇠퇴하여갔다.

다만 민국초기 원세개袁世凱가 황제라 칭하였을 때 봉건왕조를 모방하여 강서의 경덕진에 어요창을 설립하고 곽세오郭世五를 파견하여 감독시켰다. 곽세오 자신도 본래 고대자기의 애호가였지만 제작시간이 짧아 제작수량은 많지 않았다. 이 시기의 자기는 원료가 정밀하여 자기의 기벽器壁이 매우 얇다. 당시 제작된 수채水彩와 연채軟彩자기 가운데 일부에는 '홍헌년제洪憲年制' 혹은 '홍헌어제洪憲御制'라는 남채藍彩 혹은 홍채紅彩의 관지가 씌여 있다.

민국시기에는 일용자기 이외에 대량의 방고자기倣古瓷器가 출현하였다. 당시의 방고자는 전국을 횡행하였다. 이 시기 방고자의 특징은 수량의 많음과 범위의 광대함으로써, 역대의 명요자기를 방제倣制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민국후기에는 민국초기의 자기마저 방제하였다. 자주 나타나는 방고자기는 다음과 같다 :

- 삼국과 위진 및 남북조의 청자靑瓷
- 수당오대隋唐五代의 백자白瓷
- 송원宋元의 오대五大 명요자기
- 명청자기
- 민국초기의 자기.

민국자기의 조형으로는 진열용자기와 생활자기가 있다.
진열용자기로는 인물상, 불상, 금수禽獸, 복록수福祿壽의 삼성三星, 배불뚝이, 화합이선和合二仙 등이 있다.
생활자기로는 반盤, 완碗, 배杯, 접시, 담병膽甁, 항아리, 소병小甁, 비누갑, 담배통, 절합節盒, 수선반부水仙盤, 수세水洗, 모통帽筒, 화분, 필통, 필세, 필가, 차호茶壺, 어항魚缸, 죽단지, 약병藥甁, 화병花甁, 장군관將軍罐 등이 있다.

민국자기의 태토는 비교적 거칠며, 민요제품이 비교적 많아 역대자기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게 난다. 유약과 태토의 결합이 긴밀하지 못하여 유면에 기포 및 탈유현상脫釉現象이 출현한다.
청화자기의 발색은 어두운 남색藍色으로 속칭 '양람洋藍'이라고 한다. 양람은 광서光緖말기에 출현하여 민국시기에 지속되었으며, 이 시기의 민요청화자기에는 대부분 양람이 사용되었다. 회화가 정교한 기물은 점차 줄어들고 그림이 엉성한 기물이 증가하였다.
수채水彩는 광서光緖말기에 출현한 자기채색의 일종으로서, 분질粉質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채색안료의 두께가 얇으며 유리질유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민요에서 생산한 일용자기로는 모통帽筒, 호壺, 완碗, 배杯, 관罐 등이 있다.
장식의 도안도 과거의 산수와 인물 및 화훼도안에서 변화하여 한 면은 그림으로 다른 면은 시구詩句로 장식하였다. 대다수가 강서 경덕진景德鎭, 천진天津, 당산唐山 등의 자기공장에서 생산되었다. 그 가운데 강서 경덕진에서 제작한 전채(全彩-양면을 채회彩繪한 것)가 비교적 우수하다.

민국시기 자기회화의 제재로는 인물, 산수, 화조, 전지화훼纏枝花卉, 모란, '희喜'자, '수壽'자, '복福'자, 운룡雲龍, 운봉雲鳳, 송학松鶴, 송록松鹿, 오륜도五倫圖, 유수황흥柳樹黃鷹, 희작등매喜鵲登梅, 석두기石頭記, 영희도, 매란국죽의 사군자, 팔보八寶, 팔선八仙, 나비, 24효爻, 길상여의吉祥如意, 봉황모란, 경직도耕織圖, 어초경독漁樵耕讀, 삼국지고사三國志故事, 죽림칠현竹林七賢 등이 있다.
이 시기에 첩화貼花자기가 출현하였다. 전체를 첩화한 자기가 있으며, 첩화와 수채를 혼합한 자기 즉 일부분은 첩화이고 다른 일부는 수채를 그려 양자를 결합한 자기가 있다.

<방고자의 감별>
1. 삼국三國, 양진兩晉, 남북조南北朝의 청자 모방품
1) 모방청자는 진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유약와 태토의 결합이 긴밀하지 못하다.
2) 모방품은 지소법支燒法을 채용하지 않았다.
3) 모방품은 들어보면 가벼운 느낌이 들어 진품의 묵직함이 부족하다.
4) 태질의 밀도가 낮아 단단하지 못하다.

2. 수당오대隋唐五代의 백자白瓷 모방품
1) 수대隋代자기의 특징은 태토가 세밀하고 결백潔白하면서 단단하며, 유면이 윤택하고 유백색을 띠는 백색이다. 모방품의 태토는 지나치게 깔끔하다.
2) 모방품은 광택이 비교적 강하다.
3) 주로 형요邢窯와 월요越窯자기를 많이 모방하였다.

3. 송원宋元시기 각 명요자기의 모방품
1) 모방품은 투박하고 색이 바르지 않으며 유포釉泡가 비교적 많고 유질釉質이 거칠다. 균요鈞窯의 모방품은 요변으로 나타나는 반점이 그럴 듯하지 않으며 비교적 얇게 시유되었다.
2) 여요汝窯의 유약은 기물의 상부에 뭉쳐 있으며, 그 모양이 촛농과 유사하다. 모방품의 태토는 비교적 세밀하지만 그리 단단하지는 않다.
3) 가요哥窯의 유면釉面에는 '금사철선'이 존재한다. 모방품은 비록 빙렬은 모방할 수 있었으나 '금사철선'의 효과는 모방해내지 못하였다.

4. 명대明代의 영락永樂, 선덕宣德, 성화成化, 홍치弘治자기의 모방품
1) 영락시기의 첨백자甛白瓷와 청화를 모방
2) 선덕시기의 청화와 제홍霽紅을 모방
3) 성화시기의 황유黃釉자기를 모방.

명대자기의 특징은 조형이 풍만하고 혼후하며 고박하고 장중하며, 기물자체가 민국시기보다 두텁고 묵직하다.

영락, 선덕, 융경隆慶자기의 내면은 매우 규정하여 '정리淨裏(내면이 매우 깔끔한 상태를 지칭)'라고 속칭한다. 모방품에는 이러한 효과가 없다.

홍치弘治이전에는 성형후 다듬질에 주의하여 접합부위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정덕正德이후부터 가정嘉靖, 융경隆慶, 만력萬曆 및 명말明末에는 기벽에 접합흔적이 나타나고 민요기물은 더욱 심하다. 모방품에는 일반적으로 접합흔적이 없다.

명대자기 굽의 노태처露胎處에는 화석홍이 많이 나타난다. 청대에 이르러 점차로 소실되었다. 민국시기에 이르러 자기의 굽에 대부분 유약을 칠하였으므로 사저(砂底-모래가 달라 붙어 울퉁불퉁한 굽면)가 매우 적게 나타나며, 화석홍을 모방한 것은 진품처럼 선명하지 않다. 세밀히 관찰하면 약점을 찾아낼 수 있다.

명대자기의 유층은 두텁고 윤택하며, 대형기물의 굽은 대부분 시유하지 않은 사저砂底이다. 모방품은 굽에 시유한 것이 많다.

청화자기의 모방품은 청화안료의 차이로 말미암아 중후하고 고아古雅하며 선염鮮艶한 효과를 낼 수가 없었다.

명대 둥근기물의 구연부는 예리한 느낌이 들지만, 모방품의 구연부는 둥글둥글하며 모서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명대의 회화는 사의풍寫意風의 작품이 많고, 인물화는 비교적 독특하여 어린이의 머리가 커서 비례가 맞지 않아 머리가 전체의 약 1/2을 차지한다.
용龍은 비교적 비쩍 마르고 주둥이가 비교적 길어 일반적으로 저잡용(돼지 주둥이를 한 용)이라 한다.
모방품은 왕왕 위의 특징에 주의하지 못하였다.

5.청대 강희, 옹정, 건륭자기의 모방품
1) 시대가 다르므로 사용한 청화도 달라, 민국시기의 모방품은 청화의 입체감이 그럴 싸하지 못하여 매우 딱딱하고 상투적이어서 푸르고 아름다운 느낌이 없다.

2) 강희청화는 회화에 입체감이 비교적 많다. 모방품은 입체감이 부족하다. 강희후기에 출현한 낭요홍郞窯紅자기는 구연부에 '등초구(燈草口-흰색의 테두리)'가 나타나며, 모방품은 유색면에서 진품의 부드럽게 조화를 이룬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강희오채 가운데 흑채黑彩의 표면에는 한 겹의 반짝이는 유면이 나타난다. 모방품의 흑채는 거무스레하며 반짝이지 않는다. 장식도안도 강희자기만 못하다.

3) 옹정 분채와 법랑채의 모방품. 옹정시기 자기의 조형은 수려하고 우아하며 작으면서 정교하여, 기형의 비례가 조화를 이루어 곡선미가 아름답다. 모방품은 이러한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옹정분채는 부드러우면서 요염하지 않으며 문양이 세밀하고 색조가 담아하여 입체감이 강하다. 옹정이후 각 조대에 모두 모방하였지만, 민국시기의 모방품은 연분鉛粉을 과다하게 칠하고 채료彩料가 진하여 한 겹의 기름칠을 한 것처럼 매우 딱딱하여 층차가 구분되지 않으며 입체감이 약하다.

옹정법랑채(속칭 고월헌古月軒)는 태토가 세밀하고 결백하며, 채색이 화려하고 층차가 선명하여 서양유화油畵의 입체효과와 유사하며, 형상을 극히 생동하게 표현하였다. 청말민초에 앞을 다투어 모방하였으며, 일부 모방품은 심지어 진품보다 정교하였다.

'고월헌古月軒'이라는 관지의 기물과 비연호 등은 대다수가 옹정시기에 출현하기 시작한 요변홍유窯變紅釉를 모방한 제품으로서 홍색과 남색이 함께 뒤섞인 기물이며, 대부분 남색이 홍색보다 많다. 모방품에는 홍색과 흑색이 뒤섞여 있다.

4) 건륭청화와 고동채古銅彩의 모방품
건륭시기 자기의 조형은 비례가 적당하였으나 외관의 곡선미는 옹정시기의 우미優美함에 미치지 못하였으며, 가경嘉慶시기보다는 준수하고 소형기물은 더욱 정교하였다. 이후의 조형풍격상에서 가경시기는 여전히 건륭시기의 제도를 준수하였으나, 나머지 각 조마다 차례로 쇠퇴하고 민국시기에는 더욱 쇠락하였다.

건륭청화는 발색이 여러 가지이지만 안정감이 드는 순남색純藍色이 다수를 차지하며 색조가 침착하고 문양이 선명하다. 모방품은 청화안료의 차이로 말미암아 발색이 순정하지 못하다.
고동채는 분채 및 전채로 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고대청동기에 나타나는 홍색, 녹색, 남색의 녹으로 형성된 반점을 모방한 것이다. 이것은 건륭시기에 창조된 것이다.

이후에도 모방품이 나타났으며, 민국시기에 모방한 고동채자기는 조형이나 문양과 색택 등을 막론하고 유사한 점이 있지만 부족한 점도 있다.

건륭시기에는 제자공예의 수준이 극히 우수하여, 일반적으로 후대의 모방품은 진품을 혼동시키는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건륭자기의 장식도안은 시대풍격이 비교적 강하며 회화가 정교하고 층차가 선명하여 화풍이 근엄하고 세밀하다. 모방품은 일반적으로 건륭시기의 풍격을 표현해내지 못하였다.

민국시기 건륭이후 각 조대의 자기에 대하여도 모방하였지만 수량이 많지 않으며, 당시에는 주로 청삼대淸三代(강희, 옹정, 건륭)의 자기를 주로 모방하였다.

위에서 말한 바를 종합하면, 각 시대에 생산된 자기는 조형과 유색釉色과 문양 및 공예면에서 모두 각자의 특징을 구비하고 있다. 무릇 한 조대에 제작한 자기의 양식은 한 사람이 만들고 한 가마에서 구운 것처럼, 관지는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장식도안은 동일한 풍격을 가지고 있다. 두 조대의 실물을 서로 비교하면 각 조대의 풍격과 특징을 확연히 알 수 있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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