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공과 도화녀 및 대도회 | |
1. 주공과 도화녀 신선이 거주하는 동천복지洞天福地에는 모두 동남동녀童男童女가 지키고 있으며, 이들을 금동옥녀라고 한다. 태상노군太上老君의 곁에는 금동옥녀 각 30만 명이 시위侍衛하고 원시천존元始天尊에게는 금동옥녀 9,000만 명이 있다고 한다. 무당산武當山의 도관道觀에 가면, 북방 진무대제眞武大帝의 곁에 금동과 옥녀 각각 한 명이 책과 보물을 받들고 있다. 이들의 신분은 비서로서 직위는 높지 않으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진무본전묘경眞武本傳妙經>에 따르면 금동옥녀는 의전儀典을 관장하며 삼계三界의 선악善惡과 공과功過를 기록하는 신령으로 권위가 강력하였다. 민간에서는 이들을 '주공周公'과 '도화녀桃花女'라고 부른다. 금동옥녀는 송원이래의 희곡에서 신선에 관한 희곡의 중요한 배역이 되었다. 송원시기에는 남희南戱 <금동옥녀金童玉女>라는 전기傳奇가 있었으며, 원대 가중명賈仲明의 <철괴리도금동옥녀鐵拐李度金童玉女>라는 잡극雜劇이 있었다. 남희南戱 : 북송에서 원말명초(12-14세기)에 중국의 남방에서 흥성하였던 희곡의 일종. 남방에서는 ‘희문戱文 '이나 '온주잡극溫州雜劇'이나 '영가잡극永嘉雜劇'이나 '골령성수骨鳥伶聲嗽'라고도 한다. 명청시기에는 '전기傳奇'라고도 했다. 사용하는 음악인 남곡南曲은 그 후의 해염강海鹽腔, 여요강食余姚腔, 곤산강昆山腔, 익양강?陽腔의 발전기초가 되었으며 여러 지방희곡의 번영을 위하여 풍부한 자원을 제공하였다. 금동옥녀가 주공과 도화라는 주장은 원명시기의 희곡과 소설에서 기원하였다. 도화녀고사는 민간에서 오랫동안 유행하였으며 원대에 이미 <도화녀파법가주공桃花女破法嫁周公>이라는 잡극이 있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점쟁이 주공이 개업한지 30년이 지나도록 실수가 없이 백발백중이었다. 어느날 석파파石婆婆가 점을 쳤는데 아들 석류주石留柱가 밖에서 횡사할 운명이었다. 석파파는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도화녀를 만났는데 도화녀는 '양해禳解(신에게 재앙의 소멸을 기도하는 것)'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석류주를 구하였다. 석파파는 주공을 찾아 복채를 돌려받고 주공의 점괘가 신통하지 않다고 질책하자 주공이 대경실색하였다. 주공이 또 팽조彭祖의 점을 쳤는데,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 점을 쳤다. 팽조는 도화녀를 만났으며 도화녀가 양해법을 가르쳐주어 팽조는 북두성北斗星에 제사를 올려 수명을 연장하고 주공을 만났다. 주공은 그 원인을 알고 도화녀의 파괘법술破卦法術을 시기하여 팽의彭宜를 매파로 하여 도화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도화녀가 시집온 뒤에 주공은 갖은 궁리를 다하여 도화녀를 해치려 하였으나 모두 도화녀의 법술에 의해 실패하였다. 한 번은 도화녀를 해치려다가 도리어 자신의 딸을 해치게 되었으며, 그 뒤에 주공은 계속하여 도화녀를 해치려 하였으나 도화녀의 무술巫術이 고명하여 액운이도리어 주공의 집안에 떨어졌으나, 다행히 옥황상제의 은혜를 받아 주공 일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 뒤 진무대제가 나타나 주공과 도화녀가 바로 금동옥녀가 인간 세상에 환생하였으나 인연이 다 하였으므로 천상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설명해주어 하늘로 올라갔다. 도화녀고사에 관한 작품으로는 원나라 왕엽王曄의 <도화녀파법가주공桃花女破法嫁周公>(또는 <도화녀桃花女>, <파음양팔괘도화녀破陰陽八卦桃花女>, <강음양팔괘도화녀講陰陽八卦桃花女>)가 있다. 도화녀고사는 소설에도 흡수되어 <서유기西遊記> 제35회에서 손오공이 금각대왕金角大王 및 은각대왕銀角大王과 싸울 때 은각대왕銀角大王을 호로병에 잡아가두며 입으로 끊임없이 '도화녀桃花女'에게 기도하는 내용이 있다. 명말의 소설 <칠요평요전七曜平妖傳>에서도 '도화녀'가 언급되며, 청대 도광연간道光年刊(1821-1850)에 무명씨가 편찬한 <도화녀음양투전桃花女陰陽鬪戰>은 모두 16회로 구성되어 있다. 뒤에 또 <도화녀투법기서桃花女鬪法奇書>와 <도화녀음양투이전기桃花女陰陽鬪異傳奇>가 나타났다. 소설에서는 민간의 여러 전설을 흡수하여 도화녀가 '인간의 생사운명'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대항하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주공과 도화녀를 조각한 두상은 지니고 다니다가 예배하는데 사용되었다. (Link : 참고도) - 옛날의 희곡극단(戱班)에서 강호를 돌아다니며 평안무사하기를 기원하는데 사용하였다. - 청말 대도회, 홍창회紅槍會 등에서 사용하였으며, 타지에서 전투할 때 휴대하여, 기둥에 꽂아 놓고 바로 예배를 드리는 데 사용하였다. 2. 청말의 각종 무장결사조직 민국시기 비적과 군벌이 난립하여 광대한 지역의 농민들이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였으나, 무기로 몽둥이나 칼이나 창 뿐으로 적의 총과 화포에 대항할 수가 없었으므로, 강호의 술사나 무술가들에게 의지하여 중국전통의 무술과 기공을 익히고 부적과 주문에 의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아래에서 수많은 민간의 무장조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렇게 지역마다 존재하던 무장조직이 농민의 자위조직으로 발전하고 종교와 미신의 색채가 첨가되어 민간의 비밀종교와 결합하여 홍창회나 대도회 등의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무장조직은 1920-30년대에 중국 북방의 산동, 하남, 하북, 산서, 섬서, 동북삼성 및 사천 등지에서 비교적 유행하였으며, 동남 연해지역에서도 출현하였다. 대도회와 홍창회는 이러한 농민 자위무장조직의 대명사이다. 지역에 따라 명칭, 복장, 의식, 행동 등이 서로 달랐다. 다음은 민국시기에 유행하였던 조직들이다. 1) 대도회大刀會 청말 민국시기의 비밀결사조직이면서 무술단체로 '금종조金鐘?'나 '인의회仁義會'라고도 한다. 구성원들이 무술을 익힐 때 대도大刀를 소지하여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고 하며, 일설에는 무술을 연습할 때 대도大刀를 걸어놓아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고도 한다. 백련교白蓮敎의 한 갈래이며, 회원은 농민이 중심으로 도시와 농촌의 수공업자와 가난한 지식인 및 소상인들이 포함되었다. 회내에 이문離門과 감문坎門을 세워놓고, 이문에서는 향을 피우고 주문을 외었으며 칼과 창을 벌려놓았다. 감문에서는 주문을 외우는 것 이외에 무술을 연마하였는데, 주로 배도排刀(몸을 단련하여 칼을 튕겨내기)와 배창排槍(몸을 단련하여 창이나 총알을 튕겨내기) 및 배전排?(벽돌로 몸의 상반신을 때려 도검불침으로 단련하기) 등의 경기공硬氣功인 '금종조'를 익혔다. *금종조 : 소림사 사대신공의 하나로 달마대사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전해지며, 모두 12단계에 걸쳐 도검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체를 단단하게 단련하는 수련을 하며, 대성하면 천하무적이 된다고 한다. 서양의 교회세력이 강대해지자, 부적을 삼키고 주문을 외는 등의 주술적인 색채를 이용하여 신령이 보우하사 칼이나 창으로 다치게 할 수 없다고 선전하였으므로, 가난한 농민과 수공업자들이 앞을 다투어 가입하여 자신의 집안과 신체를 방어하고자 하였다. 단장을 설립하여 제자에게 전수하였으며 종교적인 색채를 띤 정치단체였다. 정치적인 목표는 서양문화의 박멸로 외국 교회세력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대도회에서는 전투하기 전에 회원들이 모두 '호신부護身符'를 지녔으며, 호신부를 백포白布나 홍포紅布로 만든 작은 주머니에 넣어 몸에 지녔다. 호신부는 황포黃布나 백색 비단(白綾子)으로 만들며 윗면에 붉은 글씨로 부적과 주문을 표시하였는데, 정중앙에 '祖師王(무량조사無量祖師)'의 명호를 쓰고 양편에 '주공조周公祖'와 '도화선桃花仙'이라고 써 넣었다. 주머니의 윗면 정중앙에 부적을 그리고 그 양편에 '주공이 총을 밀봉해 불발되게 하고, 도화선은 총알을 진흙으로 변하게 한다(周公祖封槍不發, 桃花仙化彈爲泥)'라는 문자를 써 넣었다. 이러한 부적을 지니면 '칼과 창이 들어가지 않는다(刀槍不入)'라고 주장하였다. 전투가 벌어지면, 회원들은 '도창불입'이라는 주문소리와 함께 마술에 걸린 듯이 전진하여 실제로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 또한 국민당군이 대도회와 전투를 벌일 때, 대도회원들이 용감하게 돌진하여 사병들의 사기가 저하되자, 개와 닭을 잡아 자신들의 무기에 그 피를 묻혀 대도회의 주술呪術을 물리치는 방법을 강구하여 결국 대도회를 격파하기도 하였다. <단현대도회單縣大道會> 1896년(광서 22년), 강소성 탕산?山(현재 안휘성)의 대도회 수령 방성찬龐盛選(방삼걸龐三傑)이 산동의 조현과 단현의 대도회와 연합하여 외국 교회에 대항하였다. 산동山東 조현曹縣의 유사서劉士瑞와 단현單縣의 조득례曹得禮가 대도회원을 이끌고 '서양의 종교를 섬멸하자‘는 것을 기치로 하여 교회당을 불태워 타격을 주었으며, 이들을 포함한 대도회원들은 산동, 하남, 강소, 안휘 지역에서 활약하였는데, 그 숫자가 수만 명에 달하였다. 1896년 7월에 유사서와 조득례가 청군에게 잡혀 살해되었으며, 그 후에 세력이 점차 약화되어 홍권紅拳과 의화義和 및 홍문紅門 등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제로齊魯 지역에서 계속 활약하였으며, 의화단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신해혁명시기에 산동의 대도회원들은 혁명당원 장계張繼와 송교인宋敎仁 등을 지지하기도 하였다. <교동대도회膠東大刀會 > 교동반도膠東半島는 청도靑島, 연태烟台, 위해威海, 유방水維坊 동부의 고밀高密, 안구安丘,창읍昌邑, 제성諸城 등을 포괄한다. 1927년 가을, 임기臨沂에서 교동반도에 이르는 십여 개 현에서 대규모의 대도회가 주도한 투쟁이 발생하였으며, 교현膠縣의 투쟁이 가장 격렬하여 '교동폭동 膠東暴動'이라고 불리운다. 13개 향진과 400여개 마을에 두루 영향을 미쳐 수만명이 참가하여 1928년까지 계속되었으나 군벌 장종창 張宗昌 의 군대에 의해 철저히 진압되어 10월에 해산되었다. '토비를 타도하고 세금을 내지말자(打土匪、抗捐稅)'라는 구호를 외쳤으며, 당시에 '먼저 장종창張宗昌을 타도하고 뒤에 오패부吳佩孚를 타도하여 대도회가 주인이 되자(先打張宗昌,後打吳佩孚,大刀會作主)'는 민요가 불려졌다. <장백대도회長白大刀會> 1932년 6월에 압록강변 홍토애?土崖의 대도회원 십수 명이 신방자의 포대를 공격하여 점령. 신방자新房子와 팔도구八道溝진을 중심으로 활약. 9월에 팔도진의 대도회원들이 조선의 포평葡坪에 주둔하는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150여명이 사망하고 마을이 불태워졌음. <평담대도회平潭大刀會> 1950년 음력 1월 1일(설날) 복건성 평담현平潭縣에서 대도회원 수백명이 폭동을 일으켜 중국군을 공격하였으나 즉시 진압되었음. 2) 도창불입刀槍不入의 홍창회紅槍會 홍창회는 본래 백련교에서 유래하였다. 의화단의 난이 실패한 뒤에, 나타난 홍창회는 홍영창紅纓槍을 사용하여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 산동에서 발생하여 각지로 퍼져나갔으며 하남지역에서 가장 흥성하였다. 법사가 있어 종교적인 업무와 훈련을 담당하였다. 농사를 짓고 고향에서 정착하여 생활하는 중소농민이 주요 구성원 이었으며 무직자나 도둑이나 아편꾼이나 간음자 등은 참가를 불허하였다. 홍영창은 창에 홍색의 실을 묶은 창으로, 홍영은 피를 흡수하여 창을 든 사람이 사용하기에 불편해지지 않도록 창날에 묻은 적의 피가 창대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작용을 한다. 홍색을 선택한 이유는 피의 색과 동일하기 때문이고, 또 공격할 때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최초로 동한시기에 홍영창이 이미 출현하였다. 홍창회의 참가자들은 종교적인 의식을 통하여 입회한 뒤에 100일 동안 무술과 술법을 익혔다. 술법은 98일에 걸쳐 배도술排刀術과 배창술排槍術을 익히는 것으로, 법사가 주문이 써진 부적을 수여하였다. 회원들은 매일 아침 신상 앞에서 예배하고 주문을 외운 뒤에 부적을 태워 물에 타서 먹었으며 침대나 문에 붙이기도 하였다. 적과 교전할 때 주머니에 부적을 넣어 몸에 지니거나 부적을 삼켰다. 무술은 배전排塼, 불 삼키기, 배도排刀, 배포排砲 등의 여러 종류였다. 홍창회가 받드는 신령은 민간에서 권위가 있는 대부분의 신령이 모두 해당되었다. 유불도의 주공周公과 관세음과 태상노군 및 나조羅祖(백련교의 사유조사四維祖師), <봉신방封神坊>의 형장口亨將과 합장哈將, 삼국지의 관우와 장비 및 조자룡, 수호전의 108영웅, <수당연의隋唐演義>의 진경秦璟, <서유기>의 손오공과 이랑신二郞神, 청대의 황삼태黃三太와 황천패黃天? 등이 모두 받들어졌다. 지파支派와 지역에 따라 숭배의 대상이 서로 달랐다. 홍창회는 홍색을 숭상하여 회원들은 홍건(혹은 청람건)을 쓰고 백괘자(혹은 갈괘자)를 입고 흑포로 만든 신을 신고 홍색의 허리띠를 차고 몸에 황색의 종이에 주사로 그린 부적이 담긴 홍색의 주머니를 지녔다. 손에 8척정도의 홍영창紅纓槍이나 대도를 들었으며 홍색의 수실을 매달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신식무기를 소지하여 전투력을 증강시켰다. 적과 전투할 때 부적과 주문에 의지하여 용감하게 돌진하였다. 주문을 외우며 적과의 거리가 오육백보에 이르렀을 때 부적을 꺼내어 삼키고 땅에 엎드려 절을 한 다음 몸을 일으켜 심호흡을 하고 주문을 외우며 다시 전진하다가 수십보에 이르렀을 때 맹렬히 돌격하였으며, 입으로 ‘합哈, 합哈'하고 큰 소리를 외쳤다. 3) 기타 조직 - 녹창회綠槍會, 흑창회黑槍會, 황창회黃槍會, 백창회白槍會 : 모두 홍창회를 모방한 조직으로 창에 묶은 실의 색깔이 달랐을 뿐이며, 주로 산동(魯)과 하남(豫)에서 유행하였다. - 모람회毛籃會 : 한 손에 바구니를 들고 한 손에 마술지팡이를 들었으며, 적의 총알을 바구니에 쓸어 담는다고 주장하였다. 처녀들의 조직으로 화람회花籃會도 있었다. 하남성의 북방(豫北)에서 비교적 유행하였다. - 선자회扇子會 : 손에 부적을 그려 넣은 부채를 들고 부채로 총알을 막아낸다고 주장. 하남 급현汲縣에서 유행. - 촬자회撮子會 : 적과 교전할 때 신사는 손에 물 그릇을 들로 오른 손의 식지와 중지를 합쳐 물에 부적을 그리며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하남 북부(豫北)에 유행. - 백두회白頭會 : 효모회孝帽會라고도 하며 백포로 머리를 싸매고 가슴에 부적을 붙여 적탄을 방어하였다. 하남 북부(豫北)에 많았다. - 마의회麻衣會 : 효의회孝衣會라고도 하며, 몸에 상복을 입고 왼손에 곡상봉을 들로 오른 손에 영창을 들었으며, 적을 보면 인사하고 다시 일어나 전투하였다. 회하淮河유역에 많았다. - 장발회長髮會 : 장발을 풀어헤치고 전투에 임하였으며, 법사가 먼저 땅에 무릎을 꿇고 주문을 외웠다. 하남 남부(豫南)에서 유행 - 천황회天皇會 : 신사神師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하며 목에 조주朝珠를 걸고 전투를 벌일 때, 손으로 조조를 만지며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직예直?(북경 주위의 북방)에 많았다. - 가제회哥弟會 : 전투할 때, ‘가哥' 나 ‘제弟'라는 함성을 질러 적의 탄환을 방어하였다. 회화유역과 하남의 남부에서 유행. - 육리회六離會 : 팔괘 중의 ‘이괘離卦'를 이용하여 이름을 지었으며, 홍색의 마괘자를 입었으므로 홍마괘자라고도 한다. 하북성(冀中)에서 유행 - 방도회方道會 : 황마괘자라고도 하며 하북성의 남부(冀南)에서 유행. - 천문회天門會 : 백련교의 후예로 하남성의 북부(豫北) 임현林縣, 준현浚縣, 활현滑縣, 급현汲縣 등지에서 유행. - 가로회哥老會 : 백련교의 후예로 산서성의 북부(晋北)에서 유행. 기타 淸道會, 황사회黃紗會, 구선회九仙會, 성선회聖仙會, 소도회小刀會, 일심회一心會, 흑호자교黑胡子敎, 무기회武旗會, 백기회白旗會, 날자회 捏子會 등이 있었으며, 사천성과 호북성에는 홍등교紅燈敎가 사천성에는 신병神兵이 있었다. 3. 이족대도회彛族大刀會 음력 6월 24일은 이족의 전통적인 명절로 제사를 지내고 가무와 체육활동 및 교역활동 등을 한다. 가장 특색이 있는 것은 녹풍현祿豊縣(운남성 중부의 초웅이족자치주楚雄?族自治州에 속함) 고봉향高峰鄕의 이족이 매년 화파절火把節에 거행하는 대도회이다. 대도회는 고봉향 부근의 이족 성인 남자가 참가하며, 매년 음력 6월 24일 길이가 세 자 정도 되는 ‘관공도關公刀(관우의 청룡언월도)'를 준비하여 화려한 복장을 하고 꿩의 깃털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관공도를 메고 광장이나 화파량자火把梁子(횃불을 꽂을 수 있도록 설치된 틀을 늘어놓은 장소)에 모여든다. 가면을 쓴 ‘윤사파倫司頗(천신)', ‘강영파庚英頗(지신)', ‘살석파薩昔頗(인신)'의 세 신령이 손에 대도를 든 무리를 이끌고 산위에서 전투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여 고대의 전투장면과 유사하다. 마지막에 대도부대는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을로 들어와 각각 대도무를 공연하며 악귀를 쫓아낸다. 화파절火把節 : 음력 6월 24일은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운남지역의 백족白族, 이족彛族, 보미족普米族, 납서족納西族 등은 이 날을 화파절로 정하여 각종 행사를 거행한다. 이날 사람들은 광장에 대형 횃불을 설치하고 작은 횃불로 사방을 에워싸고 나무를 쌓아놓는다. 횃불의 앞에 매우 잘 타는 물질로 태양을 상징하는 물건을 만들어 놓고, 해가 지면, 모여 있던 사람들이 각각 작은 나무막대를 들고 차례로 태양에서 불을 붙여 불씨를 만들어 쌓아 놓은 나무로 옮겨 붙여 태우고, 불씨를 각 가정으로 가지고 돌아가 집안의 화당火塘(아궁이)에 불을 붙인다. 다시 광장에 모여 대형 횃불에 불을 붙인 다음 이를 에워싸고 의식을 거행하며 행복을 기원하면서 밤을 지새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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