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나도 예술을 __하고 싶다 ”

 “ 아, 나도 예술을 __하고 싶다 ”


글: 박혜주

당신은 예술을  __하십니까

졸업 전시를 일 년 앞두고 덜컥 휴학계를 냈다. 대학에서의 삼 년을 돌이켜 보니 작업이라는 무게를 이겨내려 아등바등한 흔적이 가득하다. 조금 더, 보다 잘 해보려고 밤을 참 많이도 샜다. 그러다 결국 아침에 눈 뜨고 낮에 깨어있는 게 버거워지는 시점이 당도했다. 몸이 여기저기 고장 난 데도 참 많았다. (여기가 미대인지 병원인지, 다들 환자가 주변에 한 트럭쯤은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는 흔한 미대생의 휴학 레퍼토리. 그러나 끝내 시간 낭비라는 위험성을 감수하고라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몸보다는 마음의 문제였다. 마치 오래된 연인과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권태와 허무함.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관계에 드는 의구심.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가? 정말로?

이 짧은 질문 한 줄이 운동화 속 작은 돌조각처럼 걸려 발걸음을 우뚝 멈추게 했다. 언젠가부터 미술학도로 사는 게 즐겁지 않다. 언제부터였을까. 전시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이 작가는 어째서 성공했는지 분석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새하얀 전시장에 작품을 걸어 놓고 그럴싸한 설명을 이어 나가다가도 이 예술 쓰레기는 끝내 분리수거장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명석한 답변과 분석을 기대하고 이 글을 클릭했다면, 미리 사과드리겠다. 이 글은 답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휴학생 백수의 신세 한탄 정도. 

예술은 길고 현타는 잦다. 고로 이 정도의 괴로움으로 예술을 아주 사랑하지 않게 된 건 아니다. 다만 문득 슬퍼지는 지점이 자주 찾아왔을 뿐이다.

이를테면 미술관이 그렇다. 필자는 미대생이기 훨씬 이전부터 미술관의 열혈 관람객이자 소비자였다. 미술관의 적당한 백색소음과,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외로움, 그리고 두 시간 동안 같은 그림을 보고 있어도 생산적으로 보인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예술을 업으로 삼고자 결심했을 때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미술 분야의 소비자에서 생산자 지망생(심지어 아직 생산자도 되지 못했다)이 되었을 때부터 미술관이 어려워졌다.

한 명의 관람객으로서 전시를 보았을 때는 캡션이건 서문이건 읽지 않은 채 무모한 마음으로 작품을 보고는 했다. 작품의 제목도 색채도 잘은 모르지만, 무언가 가슴을 울리는 두근거림은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요즘 미술관에 입장한 후 필자의 행보는 보통 이러하다. 진지한 마음으로 서문의 어려운 단어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긴장하며 읽어 내려간다. 작품은 잠시 훑어만 보고 캡션으로 제목과 제작 연도, 재료를 확인한 뒤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을지 분석해 본다. 캔버스부터 물감 표면까지 작품의 면을 관찰하고 일일이 사진을 찍다 보면 내가 관람객인지 살인사건을 수사하러 온 과학 수사관인지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진다. 

작품 모두를 짧은 시간 내에 보기 위해 거의 달음박질 하듯 눈으로만 스캔한다. 이번에 남은 것은 감정이 아니라 이미지와 정보들뿐이다. 가끔은 핸드폰의 카메라 렌즈가 나보다 작품을 더 오래 보는 것 같은 허탈함을 느끼기도 한다. 한두 작품만 보아도 기운이 쭉 하고 빠진다.

물론 예전과 지금 필자가 가지고 있는 미술에 대한 깊이가 달라진 것도 요인 중 하나일 수 있다. 이 또한 전공자로서 꼭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귀로 듣듯이 작품의 관람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그러나 학습을 위해 작업을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보게 되며 감성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오히려 퇴화한 것만 같다. 

미술관은 더 이상 사색의 공간이 아니라 교과서다. 공기는 딱딱하게 굳어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의 멋진 작업과 내 작업을 비교하는 자책은 덤이다.

미술관에 다녀온 후 핸드폰 갤러리는 이러한 해부도로 채워지고는 한다
(2025 프리즈 서울 촬영)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더라도 이런 식으로 해부하다 보면 남는 건 의무감뿐이다. 관람객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작품에 참고할 수 있는 소재를 노리는 밀렵꾼이 된 것 같다. 다른 이의 작업을 그저 감탄하며 감상했던 날이 까마득하다. 그림을 보고 진짜 나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물론, 이건 필자의 ‘예술’ 사랑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을 사랑해서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예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__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라

어디서 미대가 취업이 힘들다는 소문을 단체로 들었는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알고리즘이 앞다투어 동기부여 영상을 송출하기 시작했다. 주로 면접 꿀팁, 자기 PR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 등을 담은 영상이었다. 그러던 중 노란색 궁서체로 강렬하게 뽑은 한 쇼츠의 카피가 심금을 울렸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마세요 

(상단에는 조금 작은 글씨로; 조 단위 부자 000이 자수성가한 이유)’


이런 종류의 영상이다

영상의 요는 이러하다. 강렬한 체리 레드 컬러의 포르쉐 파나메라를 모는 CEO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유튜버에게 차창 너머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프로골퍼를 꿈꿨지만, 의류 사업으로 성공했고, 취미로 골프를 치는 삶에 매우 만족한다고. 좋아하는 일보다는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택하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성공하기 쉽다는 말이다. 취미와 일을 분리해야 일에 지쳤을 때 취미활동을 하며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첨언도 있었다. 

글쎄. 좋아하는 일도, 그나마 적성에 맞는 일도 미술이었던 필자에게는 제일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두라는 말이 스릴러 영화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취미와 직업이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게 미대생 이야기라면? 단체로 그만두고 떡볶이 전문점이라도 창업해야 하나?

불가능하다. 미대생은 떡볶이 못 끓일 것 같아서가 아니다. 예술 분야는 일반적인 취업 – 노동시장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스펙을 쌓고 이력서를 제출하고 면접에 합격하는 과정과 같은 객관적인 지표가 정해져 있지 않다. 엄청난 재능이 있어도 잘되지 않을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하게 성공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분야도 완벽히 예상할 수는 없겠지만, 작가라는 직업에서 성공에 대한 결과치를 미리 도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불어 워라밸은 어떠한가. 칼퇴라는 개념 없이 밤샘 노동에 매달리고, 임금은 밤샘으로 망가진 몸의 병원비를 충당할 정도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러한 조건들 때문에 예술에 대한 애정, 혹은 성취를 느끼지 못한다면 견디기 어렵다. 그렇기에 좋아해야 업으로 삼을 수 있는 분야이다. (좋아하지 않는데 돈을 위해 예술을 하는 사람은, 없어야 하며 있다면 좀 말리고 싶다) 

따라서 자의로 예술을 선택하고, 너무 사랑한 나머지 고통받는 것은 모든 예술인의 고질병이다. 병의 증상은 다양하다. 아까 언급했던 캡션 집착 증세는 물론이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구간도 무조건 겪는다. 그저 작업하는 행위가 즐거워서 직업으로 삼았지만, 직업인으로서 거쳐야 완성되는 제련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예술인들도 많다. 

직업과 취미의 가장 큰 차이점은 타인의 유무이다. 양쪽 모두 시작은 개인의 창작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끝은 조금 다른 양상을 띤다. 취미는 나만의 공간에서 흐뭇하게 완성품을 바라보며 칭찬만 걸러 들을 수 있다. 직업은 다르다. 방에서 작품을 끄집어내 노출해야 한다. 이때 주어지는 반응은 예측 불가이다. 어떠한 가림막도 없이 타인이 내 작품을 품평한다. 내밀한 곳에 있던 소중한 것을 타인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다. 하물며 그것이 말 한마디라도 어려운데. 몇 달을 쏟은 작품이라면? 이래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일지도. 

그럼에도 __하기 때문에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을 좌우하는 건 결국 타인의 취향이며, 매우 주관적이고 시대적이다. 필자는 이것이 예술의 시작점이 누군가의 애호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세 시대의 종교적인 작품들을 그들의 신이 애호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왕족과 귀족들에게 비싼 값에 팔렸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탈리아의 대상인 로렌조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를 비롯한 귀족들이 진귀한 물건들을 수집해 응접실 캐비닛에 전시했다.


좌 Wunderkammer: The Cabinet of Curiosities / 우 2024 프리즈 서울 전경 (사진: 프리즈 서울) 이미지 출처: https://www.barnebys.com/blog/wunderkammer-the-cabinet-of-curiosities, https://news.nate.com/view/20250903n01536

현대에 와서 이게 단체인지 혹은 국가의 취향인지 그 원천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형태가 되었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캐비닛처럼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소가 있다. 필자는 몇 주 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리즈(한국 최대 미술 시장인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에 다녀왔다.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작품이 450만 달러(한화 약 62억원)에 팔린 날로부터 사흘 뒤였다. 예술에 정답은 없다지만 대중은 있을 수 있다. 페어에 구름 떼 같이 모인 사람들은 취향을 아주 잘 보여주는 걸어 다니는 지표가 된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회화 기반의 작가 지망생, 필자의 한정된 입장에서 이 지표를 보자.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작가의 대작은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프리즈 같은 곳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된다. 그러나 그 꼭짓점까지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학교를 갓 졸업한 무명의 작가가 당장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그림은 전위적이고 대담한 추상보다는 가정집 부엌에 걸릴 법한 것들이다. 일례로 국내 시장이지만 개인 컬렉터의 거래가 활발한 키아프에서 빨간원 스티커가 붙여진 작품들은 대부분 밝은 색감에 아름다운 형상을 담고 있었다. 그야 가정집 거실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퍼포먼스 비디오를 설치하는 것은 매우 대담한 일이니.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예술가 지망생으로서 필자의 오랜 딜레마 중 하나이다. 졸업 후 그림을 팔아야 먹고 사는 생업의 문턱에서 우리는 타인의 취향과 자신의 취향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어렵다. 

당장 잘 팔리는 작품은 대중의 선호 범주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없는 작품과 작가는 오래가지 못한다. 이 무슨 경력 없는 경력직 같은 문장인가.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이지만 동시의 자신의 취향을 의심해야 하는 인지부조화가 동시에 일어난다. 이러한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무엇을 택해야 할지 낙담에 빠지기도 한다. 혹은 필자처럼 도피성 휴학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필자는 대학 4년 동안 이 말을 가슴에 삼천 번 새겼다. 그리고 안다. 사랑하기에 고민하는 것이고, 어렵게도 느껴진다는 것을. 이만큼 사랑하지 않았다면 진작 예술일랑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 글도 예술을 오래 사랑하고 싶어 던진 푸념이다.

예술을 적당히 사랑할 수 있을까. 참 어려운 질문 같다. 차라리 아예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것이 더 쉬울 테다. 그렇지만 이미 사랑해 버린 걸 어쩌겠는가. 나를 잃지 않고 예술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수밖에.

필자의 말

마지막 문단의 제목을 쓰면서 故 유재하 씨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흥얼거렸습니다. 약간은 의도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노래이니 한번씩 들으십시다. 사랑합시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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