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론 ㅣ 조조, 독서로 자신을 단련하다

 조조론 ㅣ 조조, 독서로 자신을 단련하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조의 글씨)
글: 방통

​조조는 삼국시대 인물 중 순위권에 들 정도로 독서를 많이 한 인물이었다. 그의 치국방략이 모두 이 독서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래 그는 청소년기에는 불량아였지만 그래도 틈틈이 독서를 하며 자기계발을 했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들었을 때 효렴에 천거되어 관직에 나가기 전까지 읽은 책은 『춘추』, 『예기』, 『시경』 등 유가 경전이었다. 그의 사상은 겉으로는 법가적인 요소가 많이 나타나지만 내적으로는 유가의 왕도정치를 지향했다는 사실은 이미 말했으니 따로 말하지 않겠다.

광화 3년(180) 6월에 조정에서 『상서』, 『시경』, 『춘추좌전』, 『춘추곡량전』을 잘 아는 사람을 추천하라는 조서가 내려졌을 때 조조가 추천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이미 약관의 나이에 조조는 고문(古文)과 경학에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후 관직 생활을 그만두고 잠시 낙향했을 때에도 그는 낮에는 사냥을, 밤에는 책을 읽었다.

그는 일생을 거의 전쟁터에서 보냈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위서 무제기」에 인용된 『위서魏書』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군사를 지휘한 지 ​30여 년동안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낮에는 무략을 논하고 밤에는 경전을 생각하였다. 높은 곳에 오르면 반드시 부(賦)를 짓고 새로이 시를 지으면 관현(管絃)을 입혀 모두 악장(樂章)을 이루었다(御軍三十餘年, 手不捨書, 晝則講武策, 夜則思經傳, 登高必賦, 及造新詩, 被之管絃, 皆成樂章)."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책을 읽었기에 조조의 문학적 재능은 보통이 아니었다. 이랬기 때문에 조조의 주변에는 많은 문인들이 모였고 이들은 건안문학(建安文學)을 창출해냈다.

문학적 재능 외에도 군사적 재능 역시 탁월했다.

"스스로 병서 10만여 자를 지었는데 제장들은 정벌에 나서서 모두 (태조가) 새로 지은 글에 따랐다. 일에 임하여 또는 손수 절도(節度)하니 명령을 따르는 자는 크게 이겼고 가르침을 어기는 자는 패했다(自作兵書十萬餘言, 諸將征伐, 皆以新書從事. 臨事又手為節度, 從令者克捷, 違教者負敗)."

조조의 이런 탁월한 병법 지식은 그가 직접 『손자병법』에 주석을 단 사실에서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도 『손자병법』의 주석 중 조조의 주석을 넘는 것은 없다.

나 조조는 상고시대에는 활과 화살의 이로움이 있었다고 들었다. 『논어』에서 말하기를 "식량을 충실하게 하고 병사를 충실하게 한다" 라고 했고 『상서尚書』에서도 "여덟가지 다스림은 군사"라고 했으며 『주역』에서도 이르길 "군대가 바르면 성인이 길하다." 라고 했다. 『시경』에서도 "무왕이 화가 나 군대를 가지런히 한다"고 말했다. 황제(黃帝)나 은나라 탕왕(湯王), 주나라 무왕(武王)은 모두 위엄으로 세상을 바로잡았다. 『사마법司馬法』에도 "백성을 해치는 무리라면 죽여도 가하다." 라고 했다. 무력만 믿으면 멸하고 문(文)에만 기대면 통치한다면 그 또한 멸망하는 길이다. 오왕 부차(夫差)와 서(徐)나라 언왕(偃王)이 그러하다. 성인들이 군대를 쓰는 것은 평상시에는 군대를 간직했다가 때에 맞춰 출동시키는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쓰는 것이다. 나는 병법에 관한 책을 많이 봤는데 손무의 병법이 가장 뜻이 오묘했다. 손자는 제나라 출신이고 이름은 무(武)이며 오왕 합려(闔閭)를 위해 『병법』13편을 지었다. 손자는 부인들을 시험하여 마침내 그녀들을 장수로 만들었으며 서쪽으로 강력한 초나라를 격파하여 영(郢)에 입성하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나라를 위압했다. 100여년 뒤 손빈(孫臏)이 나왔는데 손무의 후손이며 군사전술을 정밀하게 다루고 군사행동을 무겁게 하며 전략을 분명히 밝히고 목적을 깊이있게 하였으니 이에 대해선 비판할 수 없다. 그러나 단지 세상 사람들은 깊이 있는 가르침과 말을 알지 못하며 게다가 기존 해석은 문장이 번잡한 상태로 세상에 간행되었는데 핵심적 요인이 빠졌으니 나는 『손자략해孫子略解』를 편찬하고자 한다(操聞上古有弧矢之利. 論語曰, 足食足兵. 尚書, 八政曰師. 易曰, 師貞丈人吉. 詩曰, 王赫斯怒, 爰征其旅. 黃帝, 湯, 武, 咸用干戚以濟世也. 司馬法曰, 人故殺人, 殺之可也. 恃武者滅, 恃文者亡, 夫差偃王是也. 圣賢之于兵也, 戢而時動, 不得已而用之. 吾觀兵書戰策多矣, 孫武所著深矣. 孫子者, 齊人也, 名武, 為吳王闔閭作, 兵法一十三篇, 試之婦人, 卒以為將, 西破強楚入郢, 北威齊晉. 後百歲余有孫臏, 是武之後也. 審計重舉, 明畫深圖, 不可相誣, 而但世人未之深亮訓說, 況文煩富, 行于世者, 失其旨要, 故撰為略解焉)."

조조만큼 『손자병법』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을 당시에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조조는 다른 예술적 재능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후에 명나라 학자였던 장부(張溥)도 조조의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조는 군대를 30여 년간 지휘하면서 손에는 책을 놓지 않았다. 초서(草書)에서는 한나라의 최원(崔瑗), 최실(崔實), 장지(張芝), 장창(張昶)의 실력을 두루 갖추고 음악에서는 환담(桓譚), 채옹(蔡邕)에 견줄만 하며 바둑에서는 왕구진(王九眞), 곽개(郭凱)에 버금가며, 또한 도가의 양생술을 좋아하여 약을 이해하고 처방할 수 있었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 자기부터 부단히 노력하던 조조. 환관 집안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 남들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그는 열심히 책을 읽었고 그 결과 그는 어느 군웅들보다도 앞서 갈 수 있었다.

손권이 여몽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할 때 그 역시 조조의 예시를 들며 여몽을 설득시켰다. 손권도 조조의 독서량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조조 앞에서는 통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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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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