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론 ㅣ 조조, 적들을 분열시키다

 조조론 ㅣ 조조, 적들을 분열시키다


글: 방통

병법에서는 적을 제압하는 정(正)과 기(奇)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라고 한다. 정은 대체로 정공법을 뜻하며 정치에서는 정도(正道) 등 원칙 같은 의미와도 대체로 통한다고 본다. 기는 대체로 임기응변, 측면공격, 기습 등 여러가지 의미를 나타내는데 대체로 변칙적인 방법, 권도(權道)와도 의미가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조조(曹操)는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사용하여 상대방을 제압했다. 특히 적이 쉽게 제압되지 않을 것 같은 경우에는 적을 분열시켜 스스로 물러나게끔 하였다. 마초와 한수를 이간질 시킨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또 하나의 사례는 손권(孫權)과 유비(劉備) 사이를 갈라놓게 하여 유비 세력을 약화시킨 경우도 있다.

흔히 조조가 손권과 동맹을 맺게 된 계기가 번성 전투로 알고 있지만 이보다 앞서 조조는 이미 손권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 유비를 패퇴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건안 16년(211) 말에서 이듬해인 건안 17년 초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 한 통이 있다. 『문선文選』에 실려 있는 건안칠자 중 한 명인 완우(阮瑀)가 쓴 '조조를 위해서 손권에게 쓴 편지爲曹公作書與孫權'가 바로 이것이다.

​떨어져서 끊긴 이래 지금까지 3년이다만 하루도 예전에 좋았던 적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이 또한 겹사돈의 의리로 생각하는 것과 정이 이미 더 깊어져서이겠지요. 서로 달라 한이 되었던 것은 분명히 더 얕아질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마음을 품고 있으니 그대도 하물며 같겠지요.  매번 옛날과 오늘날 바뀌는 까닭을 보니 어떤 일로 인하여 침욕당하고 혹은 틈이 벌어져 마음 속에 울분이 일어나 불안해져서 이 때문에 큰 변란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한신(韓信)은 초왕 직위를 잃어 상심했고 팽총(彭寵)은 남달리 바라봐주지 않자 원망했으며 노관(盧綰)은 이미 틈이 있다는 혐의로 두려워했고 영포(英布)는 정보가 누설되어 우환으로 핍박 받았으니 이런 일들이 원인이 된 것입니다. 나와 그대 사이는 골육지간과 같아서 강남을 떼어 주면서 본주(本州)에 속하지 않게 하였으니 어찌 회음(淮陰 : 한신)을 버린 것 같은 원한이 있겠습니까. 유복(劉馥)의 주장을 누르고 서로간이 두터워지고 더욱 융성해지니 어찌 주부(朱浮)가 (팽총의 음모를) 폭로하여 상주한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노관이) 장승(張勝)을 몰래 숨기고 고발한 변고도 없으며 거짓으로 비혁(賁赫)의 고변을 만든 것이나 연왕(燕王 : 노관)이나 회남(淮南 : 영포)의 틈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잔인하게 왕명을 끊고 굳은 사귐을 버린다고 밝힌 것은 실로 간사한 자들이 지어낸 것입니다. 무릇 그럴듯한 말은 듣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럴듯한 모습은 쉽사리 의견을 바꾸게 했습니다. (간사한 자들이) 화란을 일으킬 것을 보여주며 치욕을 안겨줄 것이라 자극을 주니 대장부의 마음을 가진 그대가 어찌 분노하지 않았겠습니까. 옛날 소진(蘇秦)이 한(韓)나라에서 유세를 하면서 소의 꼬리가 되지 말라고 하자 한왕이 낯빛이 바뀌어 검을 쓰다듬고 분노하며 '비록 병사가 꺾이고 땅을 잃어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말하였으니 이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어진 그대는 젊고 기운이 왕성하여 아끼는 신하를 순순히 믿고 재난이 이를까 두려워서 울분과 원한을 품어 멀게는 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고 가깝게는 일의 형세를 헤아리다가 마침내 식견이 얕은 결정과 계책을 받아들여 뒤집어진 논의를 지니게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유비가 부채질을 해대서 일은 꼬이고 틈은 계속 벌어지게 되었고 계속 밀고 나가게 된 것이니  본심은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겠지요.

離絕以來, 于今三年, 無一日而忘前好. 亦猶姻媾之義, 恩情已深, 違異之恨, 中間尚淺也. 孤懷此心, 君豈同哉. 每覽古今所由改趣, 因緣侵辱, 或起瑕舋, 心忿意危, 用成大變. 若韓信傷心於失楚, 彭寵積望於無異, 盧綰嫌畏於已隙, 英布憂迫於情漏, 此事之緣也. 孤與將軍, 恩如骨肉, 割授江南, 不屬本州, 豈若淮陰捐舊之恨. 抑遏劉馥, 相厚益隆, 寧放朱浮顯露之奏. 無匿張勝貸故之變, 匪有陰構賁赫之告, 固非燕王淮南之舋也. 而忍絕王命, 明棄碩交, 實為佞人所構會也. 夫似是之言, 莫不動聽, 因形設象, 易為變觀. 示之以禍難, 激之以恥辱, 大丈夫雄心, 能無憤發. 昔蘇秦說韓, 羞以牛後, 韓王按劍作色而怒, 雖兵折地割, 猶不為悔, 人之情也. 仁君年壯氣盛, 緒信所嬖, 既懼患至, 兼懷忿恨, 不能復遠度孤心, 近慮事勢, 遂齎見薄之決計, 秉翻然之成議. 加劉備相扇揚, 事結舋連, 推而行之. 想暢本心, 不願於此也.

나는 덕이 얕은데 지위는 높고 책임은 막중한데 운 좋게도 나라와 조정의 태평한 기운을 받아 천하를 탕평(蕩平)하게 하고 이민족들을 품고 모아 기쁘게도 모든 공을 세워 그 복을 길게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돈으로 맺어진 관계는 멀어지게 되었고 두터운 원조 관계도 틈이 생기고는 천하의 대부분이 죄를 물으며 늙은 내가 화를 일으키려 한다며 마치 정(鄭)나라 무공(武公)의 속임수를 숨기고 있다며 어진 그대로 하여금 마음을 뒤집게 하여 스스로 끊도록 할까 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나는) 부끄러움을 품고 뒤척이며 작은 일을 버리고 그만 두어 예전처럼 좋은 관계를 가지고자 항상 생각하며 두 집안이 함께 번영하여 후대까지 복이 흐르도록 하자고 평소에 그대에게 정성을 다하는 사귐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여러 해동안 생각을 품었지만 내 뜻을 풀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전에 적벽(赤壁) 싸움 때 역질을 만나 배를 불태우고 스스로 돌아왔지만 이것은 안 좋은 땅을 피하기 위한 것이지 주유(周瑜)의 수군이 우리 군을 꺾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강릉(江陵)을 수비할 때에도 곡식과 물자가 다 떨어져서 머무를 수 없었으므로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군사를 돌린 것이지 또한 주유가 우리 군을 격파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형주 땅은 본래 우리가 나눈 곳이 아니므로 나는 그대에게 형주 지역을 전부 주고 나머지를 가지려 한 것이지 서로간 살갗을 다치게 하며 손해를 끼쳐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변화는 내가 상해를 끼친 일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 지경까지 이르면서 그대에게 이 지역을 돌려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고제(高帝 : 유방)는 벼슬을 내려 전횡(田橫)을 부르고 광무제(光武帝)는 황하를 가리키며 주유(朱鮪)에게 맹세했으니 그대의 죄가 어찌 이 두 사람과 같겠습니까. 이런 지극한 정으로써 원컨대 덕음(德音)을 들려주고자 합니다.

孤之薄德, 位高任重, 幸蒙國朝將泰之運, 蕩平天下, 懷集異類, 喜得全功, 長享其福. 而姻親坐離, 厚援生隙, 常恐海內多以相責, 以為老夫苞藏禍心, 陰有鄭武取胡之詐, 乃使仁君翻然自絕. 以是忿忿, 懷慚反側, 常思除棄小事, 更申前好, 二族俱榮, 流祚後嗣, 以明雅素中誠之效. 抱懷數年, 未得散意. 昔赤壁之役, 遭離疫氣, 燒舡自還, 以避惡地, 非周瑜水軍所能抑挫也. 江陵之守, 物盡穀殫, 無所復據, 徙民還師, 又非瑜之所能敗也. 荊土本非己分, 我盡與君, 冀取其餘, 非相侵肌膚, 有所割損也. 思計此變, 無傷於孤, 何必自遂於此, 不復還之. 高帝設爵以延田橫, 光武指河而誓朱鮪, 君之負累, 豈如二子. 是以至情, 願聞德音.

지난 해에 초(譙)에 있으면서 새로이 배를 만들어서 이를 타고 내려가 구강(九江)에 이르렀던 것은 호소(湖漅)의 지형을 살피고 강가의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해서였지 깊이 들어가 공격할 계책이 있던 게 아닙니다. 아마도 (그대 쪽의) 논하는 자들이 크게 영화로워지려고 자신의 책략을 채택하여 서쪽의 우환을 오래도록 없애며 이 때문에 조정에 다시 마음을 돌리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의 생각이란 ,사물이 갖추어지기 전에 생각하는 것이며 식견이 높은 이는 조짐이 드러나기 전에 미리 그 모습을 보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오자서(伍子胥)는 고소(姑蘇)에서 사슴이 있는 것을 보고 (나라가 망할 것을) 알았고, 보과(輔果)는 지백(智伯)이 조(趙)나라에 사로잡힐 것을 알았습니다. 목생(穆生)은 칭병하여 초(楚)나라의 환란으로부터 면했고 추양(鄒陽)은 북쪽으로 떠나 오(吳)나라의 재앙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이 4명이 어찌 성인이었겠습니까. 시세 변화에 통달하여 깊이 생각한 무리여서 사소한 일을 분명히 알았을 뿐입니다. 그대는 명철하니 나의 술수(術數)를 살피고 그대가 처한 곳을 헤아리고 서로간의 영토를 계산하여 보십시오. 어찌 (내가) 세력이 적고 궁하여 멀리서 군사를 보낼 수 없어 장강의 껍데기만 쪼개서 편안해지려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수전(水戰)에 기대어 강가에 임하여 요새를 지키며 천자의 군대가 끝내 장강을 건너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 위의 싸움은 천 리에 걸치며 작전은 교묘하고 만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월(越)나라의 3군을 오나라는 결국 막아내지 못했으며 한나라는 하양(夏陽)에 가라앉혀서 위표(魏豹)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장강이 비록 넓지만 그 길이는 길어 지키기 어렵습니다.

往年在譙, 新造舟舡, 取足自載, 以至九江, 貴欲觀湖漅之形, 定江濱之民耳, 非有深入攻戰之計. 將恐議者大為己榮, 自謂策得, 長無西患, 重以此故, 未肯迴情. 然智者之慮, 慮於未形, 達者所規, 規於未兆. 是故子胥知姑蘇之有麋鹿, 輔果識智伯之為趙禽. 穆生謝病, 以免楚難, 鄒陽北遊, 不同吳禍. 此四士者, 豈聖人哉. 徒通變思深, 以微知著耳. 以君之明, 觀孤術數, 量君所據, 相計土地, 豈勢少力乏, 不能遠舉, 割江之表, 宴安而已哉. 甚未然也. 若恃水戰, 臨江塞要, 欲令王師終不得渡, 亦未必也. 夫水戰千里, 情巧萬端. 越為三軍, 吳曾不禦, 漢潛夏陽, 魏豹不意. 江河雖廣, 其長難衛也.

 무릇 일에는 마땅함이 있어서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니 장차 옛날의 좋은 관계를 닦아 형세를 펼쳐 늘이려 한 것이지 다시 적으로 위협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이 편지가 아무런 효과가 없을까 두렵습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지난 번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간 적이 있는데 지금은 멀리 있으면서 위로를 바치는 편지를 보내니 그 글이 겸손하고 뜻은 가까워서 (그대가) 혹여 내 힘이 다해서 그렇다고 여기며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채 단지 옛날의 고사를 밝히며 스스로 도모하고자 여길까봐서입니다. 옛날 회남왕(劉安)은 좌오(左吳)의 계책을 믿어서, 한나라의 외효(隗囂)는 왕원(王元)의 말을 받아들여서, 팽총은 친한 관리의 계략을 수락하였는데 3명의 필부는 깨닫지 못하고 결국에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양왕(梁王 : 유무劉武)은 공손궤(公孫詭)와 양승(羊勝)을 받아주지 않았고 두융(竇融)은 가까이 있던 장현(張玄)을 내쫓았으니 이 2명의 현인은 깨달아 복이 또한 따른 것입니다. 원컨대 그대도 이에 조금이나마 뜻을 두십시오. 만약 안으로는 자포(子布 : 장소張昭)를 멸하고 밖으로는 유비를 공격하여 충심을 드러낸다면 다시 전처럼 좋은 관계가 될 것이며 강표(江表)의 임무는 길이 그대에게 부여할 것이니 높은 자리와 중요한 작위로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위로는 조정이 명을 내려 동족의 수고로운 일을 돌아보지 않을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안전하게 복을 누릴 것이며 그대는 영화를 누리고 나도 이익을 얻게 되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만약 (장소와 유비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지극한 정성으로 대하면서 이 두 사람에 대해 죄를 가하지 않는다면 이는 이른바 소인의 인(仁)이며 대인(大仁)의 적이 되는 것이니 크고 고아한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대가 자포를 불쌍히 여겨서 같이 있고 싶어한다고 말하면 나 또한 마음을 기울여 옛 원한은 없애고 그대의 정을 따라 다시 조정에서 일하게 하고 후에 선을 쌓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단지 유비를 사로잡기만 하면 또한 충분한 일이 됩니다. 이 두 가지를 열어놓을 테니 꼼꼼히 살펴 하나를 골라 처리하십시오.

凡事有宜, 不得盡言, 將修舊好而張形勢, 更無以威脅重敵人.  然有所恐, 恐書無益. 何則. 往者軍逼而自引還, 今日在遠而興慰納, 辭遜意狹, 謂其力盡, 適以增驕, 不足相動, 但明效古, 當自圖之耳. 昔淮南信左吳之策, 漢隗囂納王元之言, 彭寵受親吏之計, 三夫不寤, 終為世笑. 梁王不受詭勝, 竇融近逐張玄, 二賢既覺, 福亦隨之. 願君少留意焉. 若能內取子布, 外擊劉備, 以效赤心, 用復前好, 則江表之任, 長以相付, 高位重爵, 坦然可觀. 上令聖朝無東顧之勞, 下令百姓保安全之福, 君享其榮, 孤受其利, 豈不快哉. 若忽至誠以處僥倖, 婉彼二人, 不忍加罪, 所謂小人之仁, 大仁之賊, 大雅之人, 不肯為此也. 若憐子布, 願言俱存, 亦能傾心去恨, 順君之情, 更與從事, 取其後善. 但禽劉備, 亦足為效. 開設二者, 審處一焉.

듣자니 형주와 양주의 여러 장수들이 항복한 자들을 얻었는데 모두 교주(交州 : 손보孫輔)는 그대가 취하였고 예장(豫章 : 유요劉繇)이 명을 거부하여 일을 받들지 않으며 역질과 가뭄이 함께 나타나 백성들과 병사들이 줄었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길은 이미 멀고 항복한 자들도 믿기 어려우며 다른 이들의 재앙을 기뻐하는 건 군자가 할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백성은 국가의 소유라서 안타까움이 더하였으니 평화를 누리기를 진실로 바랄 뿐이니 밝은 덕을 펴서 곁에서 밝게 비추도록 한다면 수로롭게 하여 평정하지 않아도 되니 내게는 더 귀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는) 병사를 어루만지며 자리를 지킬 것입니다. 이 편지를 보내 뜻을 전합니다. 옛날에는 군사가 싸워도 그 중간에 사신을 보냈으니 원컨대 어진 그대가 나의 허심탄회한 마음을 알아주고 뜻을 돌려 『시경』에서 중산보(仲山甫)를 가리키며 탄식한 일과 『주역』에서 끌어당기어 되돌리는 일이 길하다라는 뜻에 호응해주기를 바랍니다. 맑은 물에서 눈부신 비늘을 반짝이며 솟구치는 물고기 같이, 하늘을 날며 날개를 펄럭이는 새와 같을 것이니 지금이 바로 좋은 때입니다. 힘써주시면 될 따름입니다. 

聞荊楊諸將, 並得降者, 皆言交州為君所執, 豫章距命, 不承執事, 疫旱並行, 人兵減損, 各求進軍, 其言云云. 孤聞此言, 未以為悅. 然道路既遠, 降者難信, 幸人之災, 君子不為. 且又百姓國家之有, 加懷區區, 樂欲崇和, 庶幾明德, 來見昭副, 不勞而定, 於孤益貴. 是故按兵守次, 遣書致意. 古者兵交, 使在其中, 願仁君及孤虛心回意, 以應詩人補袞之歎, 而慎周易牽復之義. 濯鱗清流, 飛翼天衢, 良時在茲, 勗之而已.

『文選』 卷42 '爲曹公作書與孫權'​

다소 긴 편지를 보고 있으면 조조는 손권에게  본래 싸울 뜻이 없으니 함께 조정을 이끌자며 회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다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존재가 바로 장소와 유비이니 이 둘만 처리한다면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조조가 이 편지를 보낸 이후에도 합비 등지에서 한 두차례 더 싸웠지만 대체로 현상은 유지되었다. 하지만 이 때부터 손권은 서서히 조조 쪽으로 붙기 시작했다. 형주를 빌려가고 입을 싹 닦아버린 유비의 행태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분노를 느끼고 있던 손권이었다. 전국시대 종횡가에 버금가는 외교술을 구사하는 손권의 외교 전략도 한몫했고 유비가 걸리적 거린다는 조조의 말에 어느정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조조의 이 편지는 유비와 손권의 연합을 분쇄시키는 주요한 열쇠 중의 하나였다.

조조론 ㅣ 조조, 적들을 분열시키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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