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자문惜字文과 경석자지敬惜字紙 | |
<경석자지敬惜字紙의 유래> 경석자지敬惜字紙(글자가 써 있는 종이를 소중히 한다)는 문창제군文昌帝君과 관련이 있다. 문창文昌은 본래 성군星君으로 운명을 주관한다. 송대, 사천성四川省 재동梓潼 지방의 신령이 전화轉化되어 후대에 숭배하는 문창제군으로 되었다. 재동신梓潼神이 남송시대에 중시를 받은 것은 과거제도의 발전과 관계가 깊다. 송대의 과거는 경쟁이 격렬하였으므로, 수험생은 앞날이 캄캄하여 자연스럽게 운명을 신의 손에 맡기게 되어, 재동신은 사천지방 사람들에게 과거신科擧神의 하나로 받들어졌다. 원대에 이르러, 재동신은 원나라 정부에 의하여 정식으로 과거의 신으로 책봉되고 '문창제군'이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이러한 행위는 원나라 정부가 과거를 중시하였다는 점을 상징하는 것과 동시에 송대이후 도교가 발전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송원의 교체기에 재동신이 붓을 들어 <청하내전淸河內傳>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고 전해오는데, 이 책에서 재동신 스스로 과거를 관장한다고 자인하였으며, 이 책은 후에 <도장道藏>1)에 편입되어 도교경전의 하나로 되었다. 이로부터 도교의 전통에 재동과 문창이 정식으로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14세기 이후부터 문창성군은 문운文運을 대표하고 개인의 벼슬운(祿運)을 관장한다는 믿음이 민간에 깊이 뿌리를 박게 되었다. 대략 15세기말의 명대에, '문창'이라는 이름의 제목이 포함된 선서善書(권선징악을 가르치는 책)가 점차 보급되어 문인들 사이에서 매우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선서는 "음경문陰驚文"이라고 불리었으며, 책의 안쪽에 선비들에게 선을 행하고 덕을 권하며 자신과 자손의 과거급제를 기구하는 <문창제군수훈文昌帝君垂訓>이 들어있었다. 예를 들면, 안연표顔延表 ( 명 경태景泰5년-1454년 진사)가 편찬한 <단계적丹桂籍> 2)과 유종주劉宗周3)의 <인보유기人譜類記>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모든 선서에서는 만약 선비가 과거에 합격하고 싶으면 반드시 책에 실려 있는 각종 좋은 일을 행하여 덕을 쌓아야 한다고 권하였는데, 일반적으로 다리를 놓거나 길을 닦는 이외에 반드시 글자가 써진 종이를 아끼고 받들어야 하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글자가 써진 종이를 버리지 않도록 경고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화가 자손에게 미치고 살신의 화를 초래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밖에, 또 <공과격 功過格>이라고 불리는 선서가 있었다. 역시 도교에서 나온 것으로 송원시기부터 이미 점차로 유행하기 시작하여 명대에 이르러서는 원료범袁了凡4)과 연지대사蓮池大師5) 등이 적극적으로 제창하였는데, 내용이 더욱 방대하였다. 명대에는 이러한 공과격에 관한 사상과 행동도 더욱 유행하였다. 연지대사의 <자지록自知錄>에는 " 길에서 글자가 써진 종이를 주워 불태우며, 백 글자가 한 가지 선행이다. 버려져 있는 글자가 써진 종이를 돌보지 않은 자는 열 자가 하나의 과실이 된다(拾路遺字紙火化, 百字爲一善. 遺棄字紙不顧者, 十字爲一過.) "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두 가지의 공과율功過律에는 글자를 아끼는 관념을 공과격 功過格6)에 따라 실행하여 공과功過를 계산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글자가 써진 종이를 아끼고 이를 태우는 행위의 시초라고 추정된다. 청초에는 이러한 행위를 선양하는 각종 선서善書가 매우 유행하였으며, 심지어 일본으로 전해지기도 하였으며 이른바 "석자회惜字會"가 출현하였다. 이 석자회의 주요 기능은 모금방식으로 자금을 출자하여 사람을 고용하여 정기적으로 버려진 종이를 수집하거나 사람들에게서 버리는 종이를 구입하는 것이었으며, 아울러 종이를 태우는 자고字庫(경석자로敬惜字爐, 석자로惜字爐, 자탑字塔, 분자로焚字爐)를 건설하는 동시에 석자관념과 행동을 널리 제창하여 석자행위가 더욱 통속화되도록 하였다. 예를 들면, 상점에서 글자가 써진 종이로 화물을 포장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글자가 있는 종이로 신이나 부채나 우산 등을 만드는 것을 금지하였고, 또한 글자가 써진 종이로 환혼지還魂紙(재생지) 등을 만드는 것도 금지하였다. 음력 2월 3일 문창제군의 탄신일에 석자회원들은 문창사文昌祠에 모여 행사를 거행하고, 이러한 종이를 태운 재를 상자에 담아 악대를 앞세워 거리를 두루 돌아다녔으며, 마지막에는 배에 싣고 강이나 바다로 나아가 물에다 뿌리거나 깨끗한 땅에 깊이 묻었다. 이러한 행사는 '영성적迎聖迹'이라 불리었다. 과거에는 여러 곳에 이러한 종이를 태우는 자고가 있었으며, 성도成都 대자사大慈寺 후문, 항주杭州, 영강시永康市 용산진龍山鎭 사구촌寺口村, 영파寧波 상산현象山縣 석포진石浦鎭 등에 이러한 자고가 남아있다. 청대 중후기에 이르러, 석자활동은 유가와 불가 및 도가의 종교적인 요소들과 결합되었다. 그 가운데 도교와의 관계가 더욱 밀접하였으며, 특히 문창제군에 대한 신앙이 두드러졌다. 이에 많은 석자조직은 대부분 문창사文昌祠와 연계되었다. 심지어 석자회를 사당 안에 설치하고 사당의 주위에서 이른바 석자로를 설치하였다. 사당에서는 문창제군을 모시는 이외에 문자를 창조했다고 전하는 창힐을 모시기도 하였다. 이와 동시에 앞에서 설명한 각종 석자습관을 선전하는 선서도 더욱 유행하였다. 이러한 선서에는 《문창제군음즐문文昌帝君陰?文》,《문제효경文帝孝經》,《문창제국권효문文昌帝君勸孝文》,《문창제군권효가文昌帝君勸孝歌》,《문창제군팔반가文昌帝君八反歌》,《문창제군권경자지문文昌帝君勸敬字紙文》,《문창제군석자진전文昌帝君惜字眞詮》,《문창제군석자공죄文昌帝君惜字功罪》,《문창제군공과격文昌帝君功過格》,《공과격분류회편功過格分類匯篇》등이 있다. 이러한 사항을 통해 글자가 써진 종이를 아끼고 받드는 행동이 이미 개인의 수양활동의 일부분으로 되었으며, 그 가운데 유가적인 의미가 더욱 농후해졌음을 알 수가 있다. 이후, 공과격에서 <문창제군석자율文昌帝君惜字律>이 분화되어 나왔는데, 석자계율의 분량이 증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과격의 세목細目으로부터 독립되어 나왔다. 이러한 선서는 모두 문자를 공경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에 대하여 장려하거나 징계하는 방법이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사회적으로 글자가 써진 종이를 아끼고 받드는 습관을 더욱 진일보하여 도덕화시키고 규격화시켰다. * 주석 1) 도장道藏 : 모든 도교의 경전과 관련 서적을 모은 총서. 당나라 초기에 처음으로 ‘도장'이라는 명칭이 나타났다. 도교의 발전과 함께 도사들이 편찬한 경전이 날로 증가되자 일부 도사들이 도교서적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남조南朝 송宋 육수정陸修靜은 <삼동경서목록三洞經書目錄> 1,228권을 편집하였으며, 당나라 초기에 이르러 도교서적을 집성하여 '장藏'을 편찬하기 시작하였다. 현종玄宗 연간에 정부에서 <개원도장開元道藏>(《일체도경一切道經》) 3,744권을 편찬하였으며, 북송 진종眞宗 연간에 도사 장군방張君房이 명을 받고 <대송천궁보장大宋天宮寶藏 >4,359권을 편수하여 466함으로 포장하고 <천자문千字文>에 따라 순서를 매겼다. 휘종徽宗 시기에 <만수도장萬壽道藏> 5,481권을 편찬하여 복주福州 민현?縣에서 인쇄하였으며, 금나라 장종章宗시기에 <대금현도보장大金玄都寶藏> 6,455권을 편찬하여 각판刻板하였다. 원초에 전진파의 도사 송덕방宋德方이 <현도보장玄都寶藏> 7,800권을 간행하였으나, 이러한 서적은 모두 망실되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도장은 명 정통正統10년(1445) 43대 천사天師 장우초張宇初와 그의 제자 장우청張宇淸이 간행한《정통도장正統道藏》으로 팔국연합군이 북경을 침입했을 때 각판은 모두 소실되고, 인쇄된 경전 한 질이 북경 백운관白雲觀에 소장되어 있다. 만력35년(1607)에 50대 천사 장국상張國祥이 《속도장續道藏 》5,485권을 편찬하였다. <정통도장>에는 대량의 도교경전道敎經典, 논집論集, 과계科戒, 부도符圖, 법술法術, 재의齎儀, 찬송贊頌, 궁지宮志, 관지觀志, 산지山志, 신선보록神仙譜錄, 도교인물의 전기 등이 포함되어 있는 도교연구의 백과사전이다. 이 밖에 제자백가의 저술과 고대 과학기술에 관한 저술(의학, 천문역법, 양생술, 연단술 등)이 포함되어 있어 중국 고대의 의학, 화학, 천문학, 기공, 인체과학 등의 귀중한 연구자료이다. 도장의 각종 서적은 삼동三洞(동진부洞眞部, 동현부洞玄部, 동신부洞神部), 사보四輔(태현부太玄部, 태평부太平部, 태청부太淸部, 정일부正一部), 십이류十二類(본문류本文類, 신부류神符類, 옥결류玉訣類, 영도류靈圖類, 보록류譜錄類, 계율류戒律類, 위의류威儀, 방법류方法類, 중술류衆術類, 기전류記傳類, 찬송류贊頌類, 장표류章表類)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체재는 남북조시기 도사들이 서적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점차 형성된 것이다. 2) <단계적丹桂籍> : 《문창제군음즐문文昌帝君陰(즐;陟+馬)文》이라고도 하며 작자미상으로, 늦어도 원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고대에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계수나무를 꺾는다'라고 하였으므로 '단계'는 급제한 사람을 의미한다. '음즐'은 《상서尙書·홍범洪范》에서 나왔으며, 권선문의 '음즐'은 '음덕陰德'과 '음공陰功'이라는 의미이다. '문창제군음즐'은 사람이 남모르게 덕을 베풀고 선을 행하며 악행을 하지 않으면 문창제군이 암중으로 비호하여 복록을 내려준다는 의미이다. 이 책은 유불도가 혼합된 내용으로 유가의 삼강오륜을 중심으로 하여, 죄를 지은 사람들이 받게 되는 응보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함으로써 사람들이 선하게 행동하도록 권유하는 내용이다. 3) 유종주劉宗周(1578-1642) : 명말의 학자. 자는 기동起東. 호는 염대念臺, 절강 산음山陰 사람.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증인서원證人書院을 세워 학문을 가르쳤으며, 황종희가 그의 제자이다. 《유즙산집劉?山集》17권, 《주역고문초周易古文抄》,《논어학안論語學案》,《성학종요聖學宗要》 등의 저술이 있다. 4) 원황袁黃(?-?) : 자는 곤의坤儀, 호는 요범了凡. 만력14년에 진사에 합격,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파견되어 왜군과 평양성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이여송과 알력이 발생하여 귀국하였다. 저술에는《논어전소論語箋疏》,《원씨역전袁氏易傳》,《사기정본史記定本》,《역법신서曆法新書》등이 있다. 5) 연지대사蓮池大師(1535-1615) : 자는 불혜佛慧, 별호는 연지蓮池, 속성은 심씨沈氏. 항주 운서사雲栖寺에 거주하여 '연지대사'나 ‘운서화상'으로 불렸으며 정토종의 제8대 조사로서 선종과 정토종의 융합시켰다. 6) 공과격功過格 : 도사가 스스로 선악과 공과를 기록하는 일종의 장부책으로 선행은 '공'이 되어 '공격'에 기록하고 악행은 '과'가 되어 '과격'에 기록한다. 공이 많으면 복을 받고 과가 많으면 벌을 받는다고 하여 도교에서 도사들이 자신과 약속하여 수양하는 방법으로 삼았다. 선악에 따라 응보를 받는다는 관념은 선진시기에 이미 유행하였으, 도가에서 한대 참위설을 계승하여 수행방법의 하나로 삼았다. 스스로 선악공과를 기록하는 일은 송대의 유학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 송나라 섭몽득葉夢得의《피서록화避暑錄話》)와 청 석성금石成金의《전가보傳家寶》 등에 범중엄范仲淹과 소순蘇洵 등이 장부책을 만들어 공과를 기록하여 자신을 편달하였다는 내용이 있으며, 명대의 원료범이 제창하여 널리 유행하였으며, 고대의 선인이나 조사들이 편찬했다고 기탁한 '공과격'에 관한 서적도 매우 많이 출현하였다. <녹성祿星과 문창제군文昌帝君> 녹성은 문운文運과 이록利祿을 관장하는 신령이다. 고대 봉건사회에서는 과거를 통하여 인재를 선발하였으므로, 선비들은 과거를 통하여 관리가 되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녹祿'은 관리의 봉록을 말한다. 높은 관리의 많은 봉록이 선비들의 목표였기에 녹신(녹성)에 대한 숭배가 나타나게 되었다. 고대의 과거시험은 주로 문장을 짓는 일이었으므로, 녹신숭배가 문운文運에 대한 기원을 포괄하게 되어 녹신은 선비들의 숭배대상일 뿐만 아니라, 문화를 숭배하고 문재文才를 숭상하는 일반 백성들에게도 사랑을 받는 상서로운 신령으로 변화되었으며, 바로 '문신文神'이라 할 수도 있다. 녹신은 본래 성신星神으로 '문창文昌', '문곡성文曲星', '녹성祿星'으로도 불린다. 북두성北斗星의 여섯 개 별을 합하여 '문창궁文昌宮'이라 하는데, 그 중의 여섯 번째 별이 사람들이 숭배하는 녹성이다.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에 문창궁의 여섯째가 '사록司祿(봉록을 관장한다)'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사록'이 바로 공명과 이록을 관장하는 녹성이다. 수당시기부터 과거제도가 널리 시행된 뒤로 녹성은 마침내 선비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령이 되어, 천하의 선비들이 모두 숭배하게 되었다. 녹성은 후대에 성신星神에서 인신人神으로 전화되었다.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신은 송대에 출현한 재동신梓潼神 장아자張亞子로 '문창제군文昌帝君'이라 불린다. 재동신 장아자는 본래 지방신으로 역사적인 인물이 변한 신령이다. 장아자는 원래 사천지역의 '장육張育'과 '아자亞子'라는 두 사람이 합쳐진 신령이다. 동진東晋 영강寧康2년(374), 사천사람 장육은 스스로 '촉왕蜀王'이라 칭하며 군사를 일으켜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을 공격하다가 전사하였다. 사천사람들은 재동군梓潼郡 칠곡산七曲山에 장육의 사당을 세우고 그를 뇌택용신雷澤龍神으로 받들었다. 당시 칠곡산에는 이와 별도로 재동신의 아자사亞子祠가 있었으나, 후인들이 두 사당의 신을 합하여 '장아자'라 합칭하여 마침내 장아자가 재동신으로 변화되었다. 이후 민간에서는 또 점점 장아자에 관한 전설이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전설은 장육의 행적에 기초하여 파생되어 나온 것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장아자는 '장악자張堊子'나 '장악자張惡子'라고도 한다. <화양국지華陽國志>에는 재동현에 '선판사善板祠'라는 사당이 있으며 모시는 신령이 장아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태평환우기太平?宇記>와 <십육국춘추집보十六國春秋輯補·후진록後秦錄>에는 또 장아자가 영험한 능력을 드러내었다는 이야기기 실려 있으며, 진秦(지금의 서안 지역) 지역에 장상공묘張相公廟를 세워 장아자를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당나라로 들어와 안사의 난이 일어난 뒤에 장아자의 명성이 크게 떨쳤다. 당나라 현종玄宗이 사천으로 피난을 와 칠곡산을 지나다가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고 장아자를 좌승상에 임명하였으며, 현종과 관련된 '응몽선대應夢仙臺'가 칠곡산에 남아있다. 당 광명廣明2년(881), 희종僖宗이 황소黃巢의 난을 피하여 사천으로 와 칠곡산을 지나다가 재동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장아자를 제순왕濟順王으로 봉하였으며, 자신이 차고 있던 검을 풀어 증정하였다. 이처럼 당왕조의 숭배로 말미암아 장아자의 영향력이 신속하게 확대되어, 점차적으로 지역신에서 전국적인 신령으로 변해갔다. 송나라 때에는 장아자의 사당이 전국에 두루 세워졌으며, 기이한 사건도 퍼져갈수록 더욱 신비롭게 채색되었다. <철위산총담鐵圍山叢談>에 장안에서 서쪽의 사천으로 가는 길에 재동신의 사당이 있어 예로부터 영험하다고 하였는데, 사대부가 이곳을 지날 때에 비바람이 전송하면 반드시 관직이 재상에 이르렀으며, 진사가 이곳을 지날 때에 비바람이 전송하면 반드시 장원급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전설은 재동신을 공명과 봉록을 주관하는 신령으로 변화시켰으며, 이로부터 재동신은 사배부의 숭배대상이 되었다. 남송 오자목吳自牧의 <몽량록夢梁錄>에 “재동제군은 오산의 승천관에 있다. 이 사천의 신령은 오로지 봉록과 관직을 관장하며, 사방의 사대부로서 명예를 추구하여 시험을 보러 가는 자는 모두 여기에 기도하였다. 왕의 관직을 봉하여 '혜문충무이덕인성왕'이라 하였다(梓潼帝君, 在吳山承天觀, 此蜀中神, 專掌祿籍, 凡四方士子求名赴選者悉禱之, 封王爵曰惠文忠武李德仁聖王).”고 기록되어 있다.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재동의 문창신에게 계속하여 관직이 더해지고 제사가 융성하였다. 공명과 봉록을 추구하는 선비들은 더욱 경건하게 재동 문창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음력 정월 초사흘은 문창제군의 생신이므로, 선비들은 문창궁에 가서 문창제군에게 절을 하고 향을 사르며 제수를 바치면서 문창제군이 보우하사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공명과 봉록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녹신에 대한 제사는 또 민속활동으로도 변화되었다. 경사스러운 날에 정식으로 희곡을 공연하기 전, 왕왕 '도가관跳加官'이라는 공연을 하였는데, 주인과 빈객에게 커다란 복이 오고 승진하여 부자가 되기를 축원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 녹신으로 분장하여, 몸에 홍색의 관복을 입고 머리에 백색의 웃는 표정의 가면을 쓰고 손에 '조정에서 일품의 벼슬을 맡는다(當朝一品)'라고 써진 거대한 홀笏을 들고 무대에 올라 몇 바퀴 돌고 내려간다. 그 뒤에 도구를 든 어린이가 다시 무대에 나와 마찬가지로 몇 바퀴 돌다가 내려간다. 마지막에는 손에 홍색의 기다란 천을 들고 무대에 나와 무대 아래를 향해 끊임없이 천에 써진 '가관진록加冠進祿'이라는 글자를 보여주며 몇 바퀴 돌다가 내려간다. 이 '도가관'에는 녹신이 관운官運을 내려주기를 축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복건福建 동부 등의 지역에서는 옛날 음력 7월 7일에 녹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취공명取功名'이라는 놀이를 진행하여 녹신이 행운을 가져다주기를 기원하였다. 장원壯元과 방안榜眼 및 탐화探花를 상징하는 계원桂圓과 개암 및 땅콩 말린 것을 손에 각각 하나씩 들고 탁자 앞으로 가서 선비에게 던져서, 이 중의 하나가 그 사람의 앞으로 굴러가면 그 사람은 그 과일이 상징하는 장원이나 방안이나 탐화가 되리라고 예언하였다. 이러한 놀이는 모든 사람이 공명을 얻은 뒤에야 끝이 났다. 이 놀이에는 녹신에게 공명을 점지해줄 것을 기원하는 성격이 담겨있었다. 녹신에 대한 숭배가 민간의 풍속으로 변한 것에는 새해에 붙이는 녹신연화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녹신연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문창제군 즉 재동신을 그린 것으로, 관리의 모습이며 양 옆에 '천롱天聾(귀머거리)'과 '지아地啞(벙어리)'라는 동자상이 그려져 있다. 왜 녹신의 곁에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시동으로 그려 넣었을까?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에 따르면 “재동진군은 도호를 육양六陽이라 하고, 외출할 때마다 백색의 나귀를 몰고 다니며, 천롱과 지아라는 두 동자가 따라다니는데, 재동진군은 문장을 관장하여 귀천이 여기에 매여 있으므로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시종으로 하여 아는 자는 말하지 못하고 말하는 자는 모르도록 하여 천기가 누설되지 않도록 하였다[道號六陽, 每出駕白(라;馬+累), 隨二童, 曰天聾地啞. 眞君爲文章之司命, 貴賤所繫, 故用聾啞於側, 使其知者不能言, 言者不能知, 天機弗泄也]”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과거의 시험문제는 재동신이 결정하여 재동신에 의해 선비들의 운명이 결정되므로,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시동으로 안배하여 시험문제의 비밀을 보호한 것이라 한다. 다른 하나의 연화에 나타나는 녹신은 유사음을 이용하여 묘사하는 방법으로 사슴으로 녹신을 대체한 것으로서 상서로운 색채가 더욱 농후하다. 사슴은 본래 사랑스러운 동물로 몸에 기묘한 반점이 있고 머리 위에 아름다운 뿔이 있어 예로부터 상서로운 짐승으로 인식되어왔다. 사슴은 최초에 어진 짐승으로 여겨졌다. 전설에 따르면 왕이 어진 정치를 펴서 천하가 태평할 때 오색의 광채를 띤 사슴이 출현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슴은 '천록天鹿'이라 하며 하늘이 상서로움을 내려준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또 세상에 드믄 백록白鹿이 있는데 장수의 상징이다. 전설에 백록은 천년이상을 살 수 있으며, 백록은 보통의 사슴이 변화된 것으로 오백세가 되어야 비로소 백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과거제도가 시행된 뒤에 사슴은 공명과 봉록의 상징으로 변화되어 녹신의 상징이 되었다. 과거제도가 폐지된 뒤에도 사슴은 아름다운 형상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부귀를 가져오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남아있다. 녹신연화에서 사슴은 녹신이 타고 다니는 동물로 나타나거나 관리 형상의 인물이 잡고 있는 대상으로 나타나서 '봉록을 드린다(進祿)'와 '관운이 형통하다'는 주제를 강조한다. 또는 사슴이 복성 및 수성과 함께 그려져서 사슴으로 녹신을 대표하기도 한다. 공명과 봉록을 주관하는 신령은 녹성과 문창제군 이외에 괴성魁星과 괴성인신魁星人神이 있다. 괴성의 영향력은 문창성군처럼 강력하지는 않지만 일정한 명성이 있다. 괴성은 본래 북두성의 머리 부위에 해당하는 네 개의 별을 가리킨다. '괴魁'는 제일이라는 의미로서, 선비들이 과거의 장원을 염원하며 괴성을 숭배하여, 과거의 장원을 내려주는 신령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괴성을 고시를 주관하는 성관星官으로도 여겼다. 선비들이 괴성에게 제사를 지내어 합격을 기원하였으나, 과거시험에서 모두가 일등을 할 수는 없으므로 괴성의 활용범위는 문창성군처럼 넓지 않았으며 영향력도 적었다. 괴성의 형상은 '괴魁'자의 글자모양에서 변화되어 나왔다. '魁'자는 '鬼'자와 '斗'자가 합쳐진 글자이므로, 글자를 형상화하여 괴성은 기괴한 모습의 신령이 한 손에 됫박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붓을 든 채 과거 합격자의 성명을 낙점하는 자세로(魁星占斗), 거북의 머리 위에 서 있는 모습(獨占鼇頭)으로 표현된다. 당송시기에 황궁 정전의 계단 위에 거대한 거북(鼇)이 새겨져 있었는데, 일반 과거의 합격자들은 계단의 아래에 도열하였으나, 장원급제자는 혼자 거북의 머리 위에 서 있었다고 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괴성이 합격자를 낙점하여, 홀로 거북의 머리를 차지한다(魁星占斗, 獨占鼇頭)'라는 말과 그림으로 장원급제를 나타내었다. 괴성은 또 '규성奎星'이라고도 한다. 청나라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에 “지금 사람들이 받드는 괴성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가 없으며, 규는 문장을 관장하는 부서이므로 사당을 세워 제사지냈으나, 여전히 규를 형상으로 나타낼 수가 없으며, 규는 괴이다. 또 괴를 형상으로 나타낼 수가 없어 글자의 형태를 가져와 귀신이 발을 들고 됫박을 들게 되었다(今人所奉魁星, 不知始自何年, 以奎爲文章之府, 故立廟祀之, 仍不能象奎, 而奎爲魁. 又不能象魁, 而取字之形, 爲鬼擧足而起斗).” 괴성은 북두성의 머리 부위에 있는 네 개의 별이며, 이 근처 여섯 개의 별이 문창궁文昌宮이므로 '괴성점두'라는 설법이 나타났다. <文昌帝君惜字功過律二十四條(문창제군석자공과율 24조)> 一. 平生以銀錢買字紙至家, 香湯浴焚者, 萬功, 增壽一紀, 得享富貴, 子孫賢孝. 字紙자지 : 글자가 써진 종이. 일반 종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 一紀일기 : 세성歲星(즉 목성木星)의 공전주기를 일기一紀라 하며 12년을 말함. * 평생, 은전으로 자지字紙를 사서 향수에 씻어 태우는 것은 10,000공으로, 12년의 목숨이 늘어나며, 부귀를 얻어 누리고 자손이 어질고 효성스럽게 되리라. 二 . 平生偏拾字紙至家, 香水浴焚者, 萬功, 增壽一紀, 長享富貴, 子孫榮貴. * 평생, 두루 자지字紙를 주워 집으로 가져가 향수에 씻어 태우는 것은 10,000공으로, 12년의 목숨이 늘어나고, 길이 부귀를 누리며 자손이 영화롭게 되리라. 三. 多收字紙, 字灰深埋淨地者, 一千功, 安樂不流離, 子孫昌盛. * 자지字紙를 많이 거두고 이것을 태운 재를 깊이 묻어 땅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1,000공으로, 안정되어 타향으로 떠돌지 않으며 자손이 창성하리라. 四. 刊刻惜字書文, 偏傳世人者, 五百功, 永無是非, 多生貴子. * 자지字紙를 아끼도록 권하는 책과 글을 인쇄하여 세상에 널리 전하는 것은 500공으로, 영원히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며 귀한 자식을 많이 낳으리라. 五. 抄寫敬重字紙書訓, 闔門令其珍惜者, 三百功, 子孫發達. 합문闔門 : 온 집안. * 자지字紙를 받들고 중시하는 글을 베껴 간직하여 온 집안에서 소중히 하는 것은 300공으로, 자손이 발전하리라. 六. 見惜字文留示子孫, 及己身敬信供禮者, 百功, 安樂無禍. * 자지字紙를 아끼도록 권하는 글을 보고 자손에게 남겨 보도록 하고 스스로 공손하게 예를 하는 것은 100공으로, 편안하며 즐거워 화가 없으리라. 七. 化人銀錢, 買字紙浴焚者, 百功, 壽增一紀, 施財人永遠富貴. * 다른 사람이 은전으로 자지字紙를 사서 불태우도록 교화하는 것은 100공으로, 재물을 남에게 베풀어도 영원히 부귀하게 되리라. 八. 勸世人惜字, 幷焚怪異淫亂等書者, 百功, 本身增壽, 子孫昌盛. * 세상 사람들에게 자지字紙를 아끼고 괴이하고 음란한 글을 태우도록 권하는 것은 100공으로, 자신의 목숨이 늘어나고 자손이 창성하리라. 九. 僧道不以有字之幡幕作囊雜用, 能自戒勸人者, 五十功, 德名光顯. * 승려나 도사가 글자가 있는 깃발과 천으로 마구 사용하는 주머니를 만들지 않으며 스스로 경계하고 남을 권하는 것은 50공으로, 덕과 명성이 빛나리라. 十. 見人作踐字紙, 能以素紙換焚, 或以他物換焚者, 五十功, 百病不生, 轉禍爲福. * 남이 글자가 써진 종이를 짓밟는 것을 보고 백지로 바꾸어 불태우거나 다른 물건으로 바꾸어 불태우는 것은 50공으로, 온갖 병이 나지 않고 화가 바뀌어 복이 되리라. 十一. 禁人不以字紙拭穢者, 五十功, 其人昌盛. * 남이 자지字紙로 오물을 닦지 않도록 금지하는 것은 50공으로, 그 사람은 창성하리라. 十二. 凡人有難, 或急或緩, 見字紙必焚浴者, 萬字十功, 卽得平安. * 무릇 사람에게 급박하거나 급하지 않은 어려움이 있어도 자지字紙를 보고 반드시 씻어 태우는 것은 만 글자에 10공으로, 곧 바로 평안을 얻으리라. 十三. 勸人不以字紙及錢, 放床褥下者, 十功, 一生永得平安. * 남이 자지字紙와 돈을 침상과 이불의 아래에 놓지 않도록 권하는 것은 10공으로, 일생동안 영원히 평안을 얻으리라. 十四. 偶遇穢處, 見字紙卽收起, 不輕忽者, 十功, 一生平安. * 우연히 더러운 곳에 자지字紙가 있는 것을 보고 즉시 거두어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은 10공으로, 일생이 평안하리라. 十五. 禁人馬上有文字及錢不騎者, 十功, 永得安樂. * 말 위에 문자와 돈이 있으면 사람이 타지 않도록 금하는 것은 10공으로, 영원히 안락을 얻으리라. 十六. 不以字紙及書, 夾鞋樣, 自戒內眷及勸人者, 六十功, 子孫智慧, 不(오;心+午)逆. 혜양鞋樣 : 신발을 만드는 견본. * 자지字紙와 책으로 신발의 견본을 만들지 않도록 스스로 가족을 경계시키며 남에게 권하는 것은 60공으로, 자손이 지혜롭고 순종하리라. 十七. 勸人不以書字, 置濕處(매;雨每)爛, 幷(차;手+止)碎毁踐者, 十功, 必得名壽. * 글자를 써서 습한 곳에 두어 썩게 하고 또한 찢고 밟는 것을 하지 않도록 남에게 권하는 것은 10공으로, 반드시 명성을 얻어 장수하리라. 十八. 生平不輕筆亂寫, 塗抹好書者, 十功, 永無凶事. * 평소에 가볍게 붓을 놀려 어지럽게 글을 써서 좋은 책에 마구 칠하지 않는 것은 10공으로 영원히 흉한 일이 없으리라. 十九. 刮洗器物門壁上字者, 十功, 眼目光明. * 물건과 문 및 벽 위의 글자를 깎아 내고 씻어버리는 것은 10공으로, 눈이 밝아지리라. 二十. 讚揚敬字文爲功德者, 十功, 獲福必多. * 글자를 받들도록 권하는 글을 찬양하여 공덕을 쌓는 것은 10공으로, 복을 받는 것이 반드시 많으리라. 二十一. 見人以字紙封盖(훈;艸+軍)臭器皿, 換取浴焚者, 十功, 無惡事相遇. * 남이 자지字紙로 냄새가 나는 그릇의 뚜껑을 덮는 것을 보고 이것을 바꾸어다가 태우는 것은 10공으로, 악한 일고 만나지 않으리라. 二十二. 遇字紙汚穢, 漂淨水中, 百字一功, 免諸疾障. * 자지字紙가 더러워진 것을 보고 맑은 물로 씻는 것은 100자에 1공으로, 여러 질병과 장애를 면하리라. 二十三. 以字紙焚香爐中者, 五功, 得享吉祥. * 자지字紙를 향로에서 태우는 것은 5공으로, 형통하여 길하게 되리라. 二十四. 代人收採浴焚字紙, 萬字一功, 得享淸福, 勸人多惜報應如例. * 남을 대신하여 자지字紙를 거두어다가 태우는 것은 1만자에 1공으로, 형통하여 청복을 얻으리라. 남에게 자지字紙를 소중히 하도록 권하면 이처럼 보응을 받으리라. <文昌帝君褻字罪律二十九條(문창제군설자죄율 29조)> 一. 將人錢買要浴焚之字紙, 取用 作踐 者, 一百罪, 夭折, 子孫貧賤. * 남이 돈으로 자지 字紙 를 사서 씻어 태우려는 것을 취하여 짓밟는 것은 100죄로, 요절하며 자손이 빈천하게 되리라. 二. 騙人買字紙錢, 不買字紙焚者, 一百罪, 定然惡病夭折. * 남이 자지 字紙 를 사려는 돈을 속여 자지 字紙 를 사서 태우지 못하게 하는 것은 100죄로, 반드시 나쁜 병이 들어 요절하리라. 三. 己身不敬字紙經書, 又不訓敎子弟, 遞相輕侮者, 一百罪, 惡瘡遍體, 生癡聾暗啞. * 스스로 자지 字紙 와 경서를 공경하지 않고 또 자제를 교육하지 않아 돌아가며 업신여기는 것은 100죄로, 악성 종기가 몸에 두루 나며 어리석고 귀가 먹고 눈이 멀고 말 못하는 자식을 낳으리라. 四. 遇字紙焚處, 踏踐撲滅收用者, 八十罪, 定生腫毒. * 자지 字紙 를 태우는 곳에서 거두어들인 것을 짓밟아 없애는 것은 80죄로, 틀림없이 독한 종기가 나리라. 五. 家中破書廢紙, 換碗換糖作踐者, 八十罪, 定生癡聾暗啞. * 집안의 찢어진 책과 폐지를 그릇과 사탕으로 바꾸어 유린하는 것은 80죄로, 틀림없이 어리석고 귀먹으며 눈이 멀고 말 못하는 자식을 낳으리라. 六. 家中敬字書文, 或拭穢病(미;麻+米)爛者, 七十罪, 多惡事無救. * 집안에 간직된 글자를 아끼도록 권하는 책과 글로 문드러지는 더러운 질병을 닦는 것은 70죄로, 구제할 수 없는 나쁜 일이 많으리라. 七. 僧道以有字幡, 作囊雜用者, 六十罪, 薄福受刑. * 승려와 도사가 글자가 있는 깃발로 마구 사용하는 주머니를 만드는 것은 60죄로, 박복하여 형벌을 받으리라. 八. 以字紙包藥?經書木魚器用者, 五十罪, 蒙蔽慧心. * 자지字紙로 약을 싸고 경서와 목어木魚 및 기물을 포장하는 것은 50죄로, 지혜로운 마음이 가려지리라. 九. 以字紙拭物拭机, 及(차;手+差)(유;手柔)棄地者, 四十罪, 遭流離, 去智慧. * 자지字紙로 물건을 닦고 책상을 훔치며 구겨 땅에 버리는 것은 40죄로, 떠도는 신세가 되고 지혜가 사라지리라. 十. 勸善書惜字文, 不信不傳者, 三十罪, 窮年窘迫, 生不孝子. * 선행을 권장하는 책(勸善書)과 글자를 아끼도록 권하는 글(惜字文)을 믿거나 전하지 않는 것은 30죄로, 늙도록 궁색하고 불효자를 낳으리라. 十一. 以經書字紙, 放船艙底竝馬上騎坐者, 十罪, 生瘡受人欺侮. * 경서와 자지字紙를 선창의 바닥과 말 위에 놓아 타고 앉는 것은 10죄로, 종기가 나서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리라. 十二. 己身不敬重字紙, 反笑人者, 十五罪, 多遭 橫非. * 자신이 자지字紙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남을 비웃는 것은 15죄로, 비명횡사를 많이 당하리라. 十三. 以字紙漂汚水, 焚穢地者, 十五罪, 多目疾皆盲. * 자지字紙를 더러운 물에 띄우거나 더러운 곳에서 태우는 것은 15죄로, 눈병이 많아져 모두 장님이 되리라. 十四. 以經書作枕頭, 及錢與字放床褥者, 十五罪, 窮苦受杖. * 경서로 베개를 삼거나 돈과 글자를 침상과 이불에 놓는 것은 15죄로, 가난하여 괴로우며 곤장을 받으리라. 十五. 以字紙引火打亮者, 十罪, 生瘡癬. * 자지字紙로 불을 붙여 밝히는 것은 10죄로, 종기와 옴이 생기리라. * 부녀자가 자지字紙를 오려 신발의 모양을 만들고 꽃 모양의 쟁반과 물건을 담는 합을 만드는 것을 보고 남자로서 금지하지 않는 것은 10죄로, 갇혀서 형벌을 받으리라. 十七. 字紙糊窓(점;執+土), 褙屛表書殼者, 定寃枉不明. * 자지字紙로 창을 바르고 병풍을 배접하며 책표지를 만드는 것은 틀림없이 억울한 일을 당해 밝혀지지 않으리라. 十八. 以字紙嚼爛吐壁上, 及(차;手+止)碎作書捻者, 十罪, 爛唇, 手生惡瘡. * 자지字紙를 씹어 벽에 뱉고 찢어서 책을 구기는 것은 10죄로, 입술이 문드러지고 손에 악성 종기가 나리라. 十九. 掩昧敬字紙功德者, 十罪, 不得吉祥. * 자지字紙를 아끼는 공덕을 가리는 것은 10죄로, 길한 운을 얻지 못하리라. 二十. 女眷以字紙書夾鞋樣, 男子不禁止者, 十罪, 生(오;心+午)逆子女. * 집안의 여자가 자지字紙와 책으로 신발의 견본을 만드는 것을 남자가 금지하지 못하는 것은 10죄로, 부모에 거스르는 자녀를 낳으리라. 二十一. 婦女繡字於荷包香袋扇揷枕頭上, 不行禁諭, 及繫帶於腰間, 枕臥褻汚者, 五罪, 得暈眩拘攣疾. * 부녀자가 쌈지와 향주머니와 부채의 집 및 베개에 글자를 수놓는 것을 타일러 금지시키지 않고 허리에 요대를 묶고 베개를 베고 누워 모독하고 더럽히는 것은 5죄로, 어지럽고 눈이 흐릿해지며 손발이 뒤틀리는 병을 얻으리라. 二十二. 親筆亂寫, 抛散不顧, 及旋寫旋抹者, 五罪, 減聰明. * 직접 어지럽게 글자를 써서 마구 흩트려 돌아보지 않으며, 급히 써서 뭉개는 것은 5죄로 총명이 줄어드리라. 二十三. 以字紙扇書啓揷靴襪者, 五罪, 足生毒瘡. * 글자가 써진 부채와 편지를 신발과 양말에 꽂는 것은 5죄로, 발에 악성 부스럼이 나리라. 二十四. 以字號寫器物上, 致人坐踐者, 四罪, 家店不祥. 字號자호 : 제품의 상표나 점포의 상호를 말함. * 자호字號를 기물 위에 써서 사람들이 깔고 앉도록 하는 것은 4죄로, 집안과 점포가 상서롭지 않으리라. 二十五. 以不淨手檢閱經書者, 三罪, 生叉指瘡. * 부정한 손으로 경서를 뒤적이는 것은 3죄로, 손가락이 갈라지는 병이 나리라. 二十六. 以字塼(점;執+土)路者, 三罪, 行事不順遂. * 글자가 새겨진 벽돌로 길을 포장하는 것은 3죄로, 하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二十七. 於地上畵字者, 三罪, 多遇險阻. * 땅 위에 글자를 쓰는 것은 3죄로, 험난한 일을 많이 당하리라. 二十八. (완;宛+刀)裁字跡者, 一罪, 多受驚. * 글자를 깎고 잘라내는 것은 1죄로, 놀라운 경우를 많이 당하리라. 二十九. 以字紙褙神像, 拾納牆壁內者, 一罪, 雖有別功不錄. * 자지字紙를 신상神像에 붙여 담벼락의 안에 놓는 것은 1죄로, 비록 특별한 공이 있어도 기록되지 못하리라. | |
<석자문惜字文> | |
惜字文 三敎之中, 儒稱首, 四民之內, 士列於先. 當尊古聖之書, 宜重先賢之字. 僧家說法, 必관手以焚香, 道子談元1), 卽莊顔而正机. 豈可(艸+貌)觀2)經傳, 輕視詩書3). 或携作枕, 惟圖晝寢之安, 或疊爲欄, 僅傳遠晩之適. 科頭跣足4), 手持一卷以吟(言+我), 露背(手+難)胸5), 膝置數行而課誦. 拭抽斷箋而(卓-十+木), 拾殘紙以揮毫. 戱語嘲人, 假借聖賢之句, 淫詞敗俗, 偏多(庚+貝)唱6)之篇. 貪眠抛卷於床, 謄文嚼稿於口. 甚以廢書易物, 乃爲散棄之由. 舊冊糊窓, 却是飄零之始. 嬉戱劃言於地, 醉(酉+甘)題句於牆. 蒙館校書怒子弟而擲卷於地, 芸窓7)習字, 違點畵而碎其箋. 古人不敬若斯, 愚夫何惜之有. 由是覆(缶+覃)盖甕, 兼之拉雜烹茶, (衣+果)盞擦盤, 更以橫斜褙籠, 包煙而瑤篇伴土, 造(火+包)而錦字飛灰. 或作竹馬之頭, 騎破常堆糞穢, 或爲紙鬼之面, 戴壞必棄溝塗, 或捲燭根, 火滅則根隨瓦礫, 或糊帽(碌-石+皿), 紙碎則(碌-石+皿)擲泥沙. 作孼8)之徒專鋪(革+奚)底, 昧心之輩好(示+親)靴幇. 政刊頌詩, 傅粘滿壁, 輒爲風雨(手+崔)殘. 招醫賣藥, 偏貼沿街, 旋被汚泥塗抹. 繡戶9)爲針線之帖, 茶坊作糖果之包. 襪口裙腰多書記號, 傘頭碗底盡寫齋居. 壽圖10)裁被, 決遭夢寐之驚. 孰知분11)布縫帆, 必受風濤之險. 造孼無窮, 擧隅莫(聲-耳+缶), 百般輕褻. 寔由文士開先, 一意尊崇, 還自儒生表率. 坐書而雙眸俱(鼓+目), 惜字則奕世聯元. 因果昭彰, 切宜猛省, 報施顯著, 共勉箴規12). *주석 1). 원元 : 만물의 근원이 되는 기운인 원기元氣. 2). 막관(艸+貌)觀 : 무시하다. 경시하다. 3). 시서詩書 : 시경과 서경. 각종 서적. 4). 과두선족科頭跣足 : 맨머리와 맨발. 의관을 정제하지 않았다는 의미. 5). 노배탄흉露背(手+難)胸 : 즉 단흉로배袒胸露背. 옷깃을 풀어헤쳐 상체를 드러냄. 6). 갱창(庚+貝)唱 : 시가를 서로 주고받는 것. 7). 운창芸窓 : 서재나 서재의 창을 멋스럽게 이르는 말. 예전에 좀을 막기 위하여 책장에 운초芸草(향초의 일종)의 잎을 넣어두던 것에서 유래하였음. 8). 작얼作孼 : 지은 죄. 훼방毁謗을 놓음. 9). 수호繡戶 : 화려하게 장식한 문. 부유한 집안의 규방을 비유함. 10). 수도壽圖 : 장수를 축원하는 그림. 고양이(80살), 나비(90살), 국화, 바위, 거북, 학, 사슴, 끈을 물고 있는 새, 매화(眉), 대나무(祝) 등을 조합하여 그려 장수를 축원하는 그림. 조합에 따라 '8-90세까지 장수한다[壽居(老+毛)(老+至)]', '거북이나 학의 나이가 되도록 장수한다(龜鶴齊壽, 龜鶴齊齡)', '천하에 다 봄이 오다(六合同春, 鶴鹿同春)', '자손 대대로 장수하다(代代壽仙)', '장수를 공경하며 축하드린다(齊眉祝壽)'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11). 분(方+牟-ㅊ?) : 배뜸 분(선박의 지붕을 덮는 거적). 12). 잠규箴規 : 가르쳐 바로잡음. 바르게 되도록 깨우치는 글. <글자가 써진 종이를 소중히 취급하도록 권장하는 글> 유불도의 삼교 가운데에 유가가 첫째로 불려지며,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네 가지 백성 중에서 선비가 선두를 차지한다. 옛 성현의 책은 존중해야 마땅하고 선현의 글자는 중시해야 올바르다. 불가에서 설법할 때에는 반드시 손을 씻고 향을 피우며, 도가에서 원기元氣를 말할 때에는 얼굴을 장엄하게 하고 책상을 단정하게 한다. 어찌 경전을 무시하고 여러 서적을 경시하는가? 가져다가 베개 삼아 오직 낮잠의 편안함만을 도모하거나, 쌓아놓고 경계를 삼아 단지 어렵고 아득한 진리만 전한다. 맨 머리에 맨 발로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웅얼거리며, 옷깃을 풀어 상체를 드러낸 채 무릎에 책을 놓고 공부를 한다. 편지를 찢어 닦고나서 탁자에 놓으며, 파손된 종이를 주워 글을 쓴다. 희롱하는 말로 남을 조롱하며 성현의 말을 빌리고, 음란한 말로 풍속을 망가트리며 시를 지어 두루 주고받는다. 잠을 탐하여 책을 침상 위에 던지고, 남의 글을 베껴 입으로 원고를 씹는다. 심지어 낡은 책을 물건과 바꾸는 것은 바로 흩어서 버리는 시초가 된다. 옛날 책으로 창문을 바르면 도리어 영락하는 시초가 되리라. 장난스럽게 땅에다 글을 쓰고, 술에 잔뜩 취하여 담에 시구를 쓴다. 학당의 교서관이 제자들에게 성을 내어 땅에다 책을 내던지고, 서재에서 글자를 익히다가 필획이 어긋나면 그 종이를 찢어버린다. 옛 사람들이 이처럼 불경스러웠으니, 어리석은 자들이 어찌 소중히 하겠는가? 그리하여 단지를 덮거나 항아리를 덮는데 사용하고, 더욱이 마구 가져다가 태워서 차를 끓이며, 잔을 싸고 쟁반을 닦으며, 게다가 등롱에 마구 붙이며, 담배를 말아 멋진 문장이 흙과 뒤섞이게 하고, 불을 붙여 훌륭한 글자가 재가 되어 날아간다. 죽마의 머리로 만들어 타다가 부서지면 쓰레기에 던지거나, 귀신의 탈을 만들어 쓰다가 망가지면 틀림없이 진흙탕에 버리거나, 촛불 심지로 말아 불이 다 타면 심지는 하찮은 물건이 되어버리거나, 모자로 만들었다가 종이가 찢어지면 진흙탕에 던져버린다. 죄를 짓는 무리들은 오로지 신발 바닥을 까는데 사용하고, 어리석은 무리들은 신발에 덧붙이기를 좋아한다. 정부의 포고문과 찬송하는 시문을 벽에 가득 붙여 번번이 비바람에 훼손된다. 의원을 초빙하고 약을 판매하는 글이 거리를 따라 두루 붙어있어 이리저리 오물이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규방에서는 바느질하는 본이 되고 찻집에서 과자를 싸는 포장지가 된다. 양말이나 허리띠에 ‘모모 기記'와 ‘모모 호號'라 써 있는 것이 많고, 우산과 그릇에 모두 ‘모모 재齋'와 ‘모모 거居'라 써 있다. 축수도祝壽圖로 이불을 만들면 틀림없이 자나 깨나 놀라는 경우를 당하리라. 글자가 써진 종이로 선창을 바르거나 돛을 꿰매면 반드시 험난한 풍파를 당함을 잘 알아야 한다. 한없이 짓는 죄는 예를 들어도 끝이 없으며, 온갖 경박하고 외설스러운 행위도 한이 없다. 이리하여 선비들이 앞장서서 한 마음으로 문자를 드높이고 또 스스로 유생儒生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책을 깔고 앉으면 두 눈이 모두 멀고, 글자가 써진 종이를 아끼면 세상에 빛나도록 연이어 장원급제를 하리라. 인과가 분명하게 드러나리니, 간절하고 적절하게 깊이 스스로 반성하면, 베푼 것에 대한 보답이 뚜렷하리니, 권고문을 따라 함께 힘써 노력하시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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