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파도八破圖(금회퇴錦灰堆) | |
1. 팔파문의 기원과 발전 전통 중국화의 여러 가지 회화문양 가운데 비교적 적게 보이는 것에 '팔파문八破紋'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파손된 여러 가지 문양'이라는 의미이다. '팔파八破'는 '길파吉破'나 '십금병什錦屛'이라고도 하며, 원대에 출현하여 청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유행하였던 민간의 회화양식으로, 경덕진의 도자업계에서는 '금회퇴錦灰堆'라고 속칭한다. '금회퇴'는 최초에 화가가 그림을 그린 뒤에 남은 필묵을 이용하여 재미 삼아 그린 것으로서, 통상 서재의 한 모퉁이에 멋대로 펼쳐진 책과 그림, 폐기된 그림 원고, 마구 놓여진 몽당붓, 어지럽게 쌓여있는 종이 뭉치 등을 그려 놓아, 보기에 휴지통을 둘러엎은 것 같으므로 '둘러엎은 휴지'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금회퇴는 부서지고 남은 모습을 그려내어 마치 재속에서 타다 남은 것을 다시 끄집어 낸 듯하므로 '금회퇴'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한 듯하다. '금회퇴'라는 단어는 원대 전선錢選의 <금회퇴錦灰堆>라는 작품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작품에는 '세상의 버려진 물건을 나는 버리지 않고 그림으로 그려 세월을 보냈다(世間棄物, 余所不棄, 筆之于圖, 消引日月)'라는 제사題辭가 있다. 다만 전선의 '금회퇴'는 게의 집게발, 새우꼬리, 닭의 날개, 조개 껍질, 죽순, 연 밥 등 먹다 남은 사물을 극히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진정한 의미의 팔파문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묘사된 형상의 상태를 이용하여 '팔파도八破圖'나 '팔단금八段錦' 이라고도 불렀다. 이후로 그 영향을 받아 역대의 문인화가들이 '금회퇴'라는 작품을 창작하였으나, 중국회화사에서 금회퇴는 유희성을 가진 일종의 서화예술이었다. '팔파八破'의 '팔八'은 허사로 '많다(多)', '부유하다(富)', '발전하다(發)' 등의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파破'는 파손된 서화작품과 책의조각을 말하지만, '부서진 집이 만관의 가치를 지닌다(破家値萬金)'나 '세파歲破에도 길한 일이 생겨난다(歲 破吉生)'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7-8세기의 목판화에서 박고博古, 여의如意, 길상물吉祥物 등을 제재로 하여 쌓아놓듯이 구성한 작품이 있었으며, 서로 중첩된 팔파도의 구도는 박고도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팔파문과 박고문의 차이는 완전과 불완전에 있다. 박고문은 완전한 형상을 묘사하지만, 팔파문은 가장 기본적인 특징인 '파破' 즉 '파손된 형상'을 표현대상으로 한다. 중국의 고대회화에서 중국인은 파손된 물건을 싫어하거나 심지어 꺼려하였으며, 서양 문학에서처럼 '폐허'를 주제로 한 것은 19세기 이전의 중국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팔파도는 최초로 일종의 '허무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19세기에 중국에 발생한 관념의 변화를 암시할 분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19세기 다사다난했던 중국역사의 사실적인 투영이었다. 즉 금석학金石學의 흥기로 잔결殘缺된 고대 문물에 대한 미적 향수를 느끼는 동시에 19세기 중기부터 열강의 침입과 내부의 혼란으로 수많은 문화유산이 파괴되자, 남은 문물에 대하여 아끼는 심리가 팔파화 유행의 특수한 사회역사적인 배경이 되었다. 팔파문의 풍격은 사실적인 것으로, 화가는 전력을 다해 대상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하였다. 팔파문은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어 문자를 이용하여 구성하는 형식으로 출현하여 간찰과 고서적 및 목독木牘 등을 이용하여 고아한 기풍을 추구하였다. 팔파문의 내용은 역사적인 것으로 세월의 흥망을 거슬러 올라가 옛 것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작품에 기탁하였다. 이러한 팔파화는 청말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1930-4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으며, 상점에 걸어놓아 가게를 장식하거나 저택의 실내를 장식하는 것 이외에도, 부채나 화첩의 형식으로 그려져 선물용이나 소장용으로 제작되었으며, 자기와 비연호 및 합 등 공예품에도 장식문양으로 사용되었다. 팔파문의 20세기초, 서양의 콜라쥬(Collage)와 유사하나, 팔파문의 파손된 형상은 손으로 그린 것으로서 실물을 잘라 붙인 콜라쥬와는 재질과 형식면에서 차이가 크다. 2. 도자기와 팔파문 <중국고대도자감상사전>에서는 금회퇴를 '자기 문양장식의 하나로 명대 성화연간成化年間 에 나타난 일종의 복잡하고 규격화된 도안문양'이라고 설명하였다. 도자기에서 금회퇴는 절지화과折枝花果를 사방에 가득하게 장식한 것으로 명대에는 '금분퇴錦盆堆'라고 하여 각종 이름난 꽃과 상서로운 과일을 그 안에 쌓아놓았다는 의미였으나, 후에는 비단 바탕 위에 절지화折枝花 문양으로 장식하는 것을 '금상첨화錦上添花'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팔파문을 금회퇴라고 속칭하는 것은 의미상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도자기에서 진정한 의미의 팔파문을 사용한 기물은 동치연간 同治年間 에 출품된 팔파를 제재로 한 쟁반과 필통 등이다.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는 함풍연간 咸豊年間에 경덕진의 어요창에서 제작한 십금병문반什錦屛紋盤은 테두리에 개광開光을 만들어 산수를 그려 넣고, 주제화면은 청동정靑銅鼎과 마애석각 및 <난정서蘭亭序>의 탁본이며 반변자半邊字(글자를 반으로 잘라 합치면 완전한 글자가 되는 글자)나 반절자半截字(글자를 상하좌우로 분리하여 반만 쓰는 것)로 정자正字를 대체하였으므로, 팔파문의 형식과 극히 유사하였다. 이것은 19세기 말기의 호고풍조好古風潮의 반영이자 사회현실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이다. 도자기 장식으로 사용된 팔파문은 박고博古와 사실적인 묘사와 통속적인 문화 및 상품이 융화된 것으로, 근대 도시문화에서 추구하였던 심미관의 일단을 투영해주고 있다. 화가 양위천楊渭泉, 황윤黃潤, 원동휘, 추락생, 정달보鄭達甫(1891-1956年) 등이 팔파문을 이용하여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정이중丁二仲이 만든 수정내화팔파도비연호水晶內畵八破圖鼻烟壺와 마소선馬소宣(1867-1939)의 내화팔파도비연호 등이 있으며, 청말민국시기의 완과 문방구에 팔파문이 많이 사용되었다. * 전선錢選(1239-1301) : 호주湖州(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오흥吳興) 사람으로 자는 순거舜擧, 호는 옥담玉潭. 남송에서 원초의 화조화가로 조맹부와 함께 ‘오흥팔준吳興八俊'의 일인으로 불렸다. * 세파길생歲破吉生 : '태세太歲'는 '세신歲神'이라도 하며, 12지에서 그 해에 해당하는 간지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2006년 병술년丙戌年의 태세는 술戌이 되고, 2007년 정해년丁亥年의 태세는 해亥가 되며, 태세가 위치한 방향(술의 방향-서북편서西北偏西, 해의 방향-서북편북西北偏北)에는 거대한 정正(+)의 기氣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러한 태세와 마주하는 위치가 ‘세파歲破'이다. 태세의 방향에 강력한 기가 있듯이, 이와 마주하는 세파의 위치에도 태세와 반대되는 부負(-)의 강력한 기氣가 존재한다. 예를 들면 술의 세파는 진辰의 방향(동남편동東南偏東)이고 해의 세파는 사巳의 방향(동남편남東南偏南)이 된다. 이처럼 태세와 세파의 정부正負에 해당하는 두 종류의 기가 음양으로 서로 짝하여 서로 맞서고 충돌한다. 이것을 적당하게 운용하면 금상첨화이지만, 부당하게 운용하면 화가 겹치게 된다. '세파에 해당되면 큰일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다(日値歲破, 大事不宜)'는 말은 부정적인 방향에서 사람들에게 이 날과 이 방위를 범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그러므로 '세파길생歲破吉生'이라는 것은 큰일을 피해야 하는 세파일에도 길한 일이 생겨난다'는 것으로 매우 상서롭기를 바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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