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방통
건안 12년(207). 조조는 다음과 같은 영을 내렸다.
"내가 의병(義兵)을 일으켜 폭란을 베어버린 지 어느덧 19년이다. 정벌을 나서서 반드시 이겼는데 어찌 나의 공이겠는가? 이는 현명한 사대부들의 힘 덕분이다. 천하가 비록 다 평정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응당 현명한 사대부들과 함께 평정해야 할 것이니 오직 그 수고를 혼자만 누린다면 내가 어찌 편안하겠는가. 서둘러서 공로를 정해 봉하여라(吾起義兵, 誅暴亂, 于今十九年. 所征必克, 豈吾功哉. 乃賢士大夫之力也. 天下雖未悉定, 吾當要與賢士大夫共定之, 而專饗其勞, 吾何以安焉. 其促定功行封)."
이것이 바로 『삼국지』 「위서 무제기」에 실린 봉공신령(封功臣令)이다.
조조는 전투에서 승리한 공을 자신만 독차지하지 않았다. 그는 부하들에게 공로를 돌리고 그들에게 포상을 내리도록 조치하였다.
특히 조조는 순욱의 공로를 가장 높이 사 헌제에게 순욱에게 상을 내려줄 것을 청하는 표를 올렸다. 윈굉(袁宏)의 『후한기』를 보자.
"상서령을 맡은 순욱은 신의 군영에 있을 때부터 참여하여 같이 전략을 세웠고 두루 정벌을 다녀 매번 승리를 하고 저와 함께 기묘한 책략과 은밀한 모책을 세워 전부 함께 결정했습니다. 순욱이 상서대에 있으면서 항상 신과 서신을 주고 받으며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결정하였습니다. 『시경』에서는 심복이 되는 사람을 아름답게 여기고 옛 경전에서는 모략으로 이기는 것을 귀하게 여겼으니 나라의 공업이 완성된 것은 순욱의 공입니다. 그러나 신만 홀로 특별한 은총을 받았으니 마음은 불안하였습니다. 순욱과 신이 일을 완수한 공은 나란히 하니 마땅히 봉작과 상을 내리셔서 뒷사람들에게 권장해야 합니다(守尚書令荀彧, 自在臣營, 參同計畫, 周旋征伐, 每皆克捷. 奇策密謀, 悉皆共決. 及彧在臺, 常私書往來, 大小同策, 詩美腹心, 傳貴廟勝, 勳業之定, 彧之功也. 而臣前後獨荷異寵, 心所不安, 彧與臣事通功并, 宜進封賞, 以勸後進者)."
이후 원소를 격파했을 때에도 조조는 특별히 순욱의 봉작을 올려주기를 청하는 표를 올렸다. 하지만 순욱이 10번 정도 사양하는 바람에 조조도 더는 강권하지 않았다.
조조는 순욱 뿐만 아니라 순유(荀攸)나 곽가(郭嘉) 등 책사들의 활약을 높이 사 그들을 칭찬하고 공로를 기렸다.
"군사 순유는 처음에 신을 보좌할 때부터 정벌에 따라 나서지 않은 적이 없었고 전후로 모두 이겼으니 모두 순유의 모략 덕분이었습니다(軍師荀攸,自初佐臣,無征不從,前後克敵,皆攸之謀也)."
"…(곽가가) 군려(軍旅)에 있은 지 10여 년인데 나설 때면 항상 수레에 같이 탔고 안앚을 때면 함께 장막에서 자리를 폈습니다. 동쪽으로 여포(呂布)를 잡고 서쪽으로 휴고(眭固)를 취하였으며 원담(袁譚)의 머리를 베고 북방의 무리들을 평정했고 험한 요새를 넘어 오환을 소탕했습니다. 요동 지역을 위엄으로 진동시키고 원상(袁尚)을 효수하였습니다. 비록 천자의 위엄을 빌려 쉽게 군사를 지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만 적에게 임하여 떨쳐 일어나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을 맹세하여 흉악한 적들을 이길 수 있었던 공훈은 실로 곽가에게 있습니다. 신이 오늘날 면하여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곽가의 공 덕분입니다…(…自在軍旅, 十有余年, 行同騎乘, 坐共幄席. 東禽呂布, 西取眭固. 斬袁譚之首, 平朔土之眾. 逾越險塞, 蕩定烏丸, 震威遼東, 以梟袁尚. 雖假天威, 易為指麾, 至于臨敵, 發揚誓命, 兇逆克殄, 勳實由嘉. 臣今日所以免戾, 嘉與其功…)"
이렇게 조조는 참모의 공적을 잊지 않고 그들의 공을 높이 사 보답을 해주려고 했다. 그렇다고 무장들의 공을 잊었던 것은 아니다.
건안 11년(206)에 장료(張遼), 우금(于禁), 악진(樂進)을 칭찬하면서 그들의 공에 보상해야 한다고 조조는 표를 올렸다.
"무공은 이미 넓고 계략은 갖추어져 있습니다. 충절의 성품은 한결 같으며 절개와 의를 지킵니다. 매년 전투에서 공격에 임하여 항상 병사들을 지휘하였습니다. 강한 적과 분투하고 견고한 적에 돌격하니 견고하더라도 함락시키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북을 끌어안고 또한 별도로 정벌하러 보내 군사들을 통솔하게 하면 군사들을 어루만져 화합하게 하고 명을 받들어 범하지 않았습니다. 적을 당해서는 과감하게 결단하고 실수한 바가 없으니 그들의 공적을 논하여 기록하고 각각 마땅히 포상과 은총을 주십시오(武力既弘, 計略周備. 質忠性一, 守執節義. 每臨戰攻, 常為督率. 奮強突固, 無堅不陷. 自援枹鼓, 手不知倦. 又遣別征, 統御師旅. 撫眾則和, 奉令無犯. 當敵制決, 靡有遺失. 論功紀用, 各宜顯寵)."
조조의 청에 따라 우금은 호위장군, 악진은 절충장군, 장료는 탕구장군이 되었다.
조조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부하들에 대한 배려심과 그들의 공을 항상 인정하고 높이 평가해주어 그들로부터 충성심을 얻어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