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기漆器의 개요와 감정

칠기漆器의 개요와 감정


1. 중국고대 칠기의 역사
각종 기물의 표면을 칠하여 만든 일상용구와 공예품 및 미술품 등을 일반적으로 ‘칠기漆器'라고 한다. 생칠生漆은 칠나무(漆樹)에서 채취한 천연액즙으로 주로 칠분漆分, 칠매(칠효소), 수교질樹膠質, 수분水分으로 구성되어 있다. 생칠을 도료로 하면 내습성耐濕性, 내고온성耐高溫性, 내부식성耐腐蝕性 등의 특수한 기능을 구비하게 되며, 또한 색이 다른 칠안료를 배합할 수가 있어 색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칠의 성능을 인식하여 기물에 사용하였다. 상주시대商周時代를 거쳐 명청시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칠기공예는 끊임없이 발전하여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중국의 창금(Cangjin)과 묘금描金 등의 공예품은 일본 등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신석기시대의 칠기>
절강성浙江省 여요하余姚河 하모도문화河姆渡文化의 제삼문화층에서 출토된 목제완木制碗의 안팎에는 색이 선염鮮艶한 주홍색의 도료가 칠해져 있었으며, 이 도료의 물리적인 성능은 칠과 동일하였다.
강소江蘇 오강吳江 매언梅堰의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종색棕色의 채회도기彩繪陶器가 발견되었으며, 이 종색의 물질에 대한 초보적인 시험결과는 칠이었다.
요녕성遼寧省 오한기敖漢旗 대전자大甸子의 고대무덤에서 출토된 술잔형의 박태주칠기薄胎朱漆器는 지금으로부터 약 3400-3600년 전의 물건이었다.

<상주시기商周時期의 칠기>
상대중기商代中期의 황파黃坡 반룡성盤龍城 유적지에서 한 면은 조화雕花이고 한 면에 주색朱色이 칠해진 목관의 판이 발견되었으며, 하북河北 고성대(Gaocengtai)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칠기파편 가운데 조화雕花하여 색을 칠하고 송석松石을 상감한 파편이 있었다. 안양安陽 후가장侯家莊 상대商代의 왕릉에서 발견된 칠회조화목기漆繪雕花木器 가운데에는 조개껍질과 옥석 등이 상감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물을 통하여 상대의 칠공예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가 있다.

<전국시기戰國時期의 칠기>
전국의 칠기는 칠기역사에서 중대한 발전의 시기로서 기물의 품종 및 수량이 크게 증가하였으며, 기물의 골격의 제작법과 조형 및 장식수법의 창조성이 두드러졌다.
전국칠기가 출토된 지역은 광범위하다. 신양信陽 장대관長臺關 초묘楚墓에서 출토된 채회신괴용사彩繪神怪龍蛇 및 수렵악무狩獵樂舞의 소형 슬瑟, 수주隨州 증후을묘曾侯乙墓에서 출토된 원앙합鴛鴦盒, 강릉江陵 초묘楚墓에서 출토된 뱀과 조개 및 금수가 뒤엉켜서 구성된 채회투조소좌병彩繪透雕小座屛 등은 이 시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한위진남북조시기의 칠기>
서한西漢(B.C.206-A.D.25)의 칠공예는 기본적으로 전국시대의 풍격을 계승하였지만, 새로운 발전도 이룩하여 생산규모가 더욱 확대되고 제작지의 분포도 넓어졌다.

대형기물이 출현하여, 직경이 70cm를 초과하는 반盤과 높이가 60cm에 가까운 종鍾 등이 나타났다. 동시에 교묘하게 약간의 소형기물을 조합하여 하나의 기물로 제작한 것으로서, 6개의 순첩順疊과 1개의 이배耳杯를 담은 합, 박태薄胎의 단층 혹은 이층으로 되어 칠한 상자, 5개나 7개 혹은 더 많은 것을 담은 크기와 모양이 다른 작은 합 등이 있다.

새로운 기법으로 침획전금針劃塡金(날카로운 도구로 획화하고 금을 메워 칠하기)한 것, 두텁게 물질을 겹쳐 쌓아 문양을 구성한 퇴칠堆漆 등이 있었다. 게다가 기물의 꼭대기에 금속제의 꽃잎을 상감하고, 마노나 유리구슬로 꼭지를 만들었으며, 기물의 몸체에 금은의 단추 및 테를 상감하고, 그 사이에 금박이나 은박으로 인물과 신괴神怪와 조수鳥獸의 형상을 조각하여 붙였으며, 채회彩繪한 구름이나 산석山石 등으로 배경을 장식한 것은 이전에 없었던 형식이었다.

서한의 칠기에는 명문을 새긴 것이 많으며, 관리와 장인匠人의 이름을 자세히 열거하였다. 동한東漢(25-220)과 위진남북조시기(220-589) 칠기의 출토는 전대에 비하여 매우 희소하며, 이것은 부장풍속의 변화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

<당대唐代(618-907)의 칠기>
당대의 칠기는 공전절후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조칠퇴소稠漆堆塑로 성형하여 볼록하게 솟아난 문양의 퇴칠堆漆, 조개껍질을 잘라 문양을 만들어 선을 조각하고 칠한 표면에 상감하여 장식한 나전기물, 금은으로 만든 문양을 상감하여 만든 금은평탈기金銀平脫器가 존재하였다. 공예수준이 이전 시대를 초월하여 투각透刻과 쪼아내고 구멍을 뚫는 기술이 절묘하게 칠공예와 서로 결합되어, 당대唐代의 풍격風格을 대표하는 공예품이 되었다. 협탄조상夾綻造像은 남북조이래의 탈태기법脫胎技法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척홍칠기剔紅漆器도 당대에 이미 출현하였다.

<송원시기宋元時期의 칠기>
송대宋代(960-1279)는 일찍이 단색칠기單色漆器의 시대라고 간주되었지만, 출토된 여러 문양의 칠기를 통하여 과거의 인식이 수정되었다. 소주蘇州 서광사탑瑞光寺塔에서 발견된 진주사리경당眞珠舍利經幢에서 받침대에 장식된 산예와 보상화寶相花 및 공양인供養人 등은 조칠퇴소稠漆堆塑한 것이었다.

원대元代(1271-1368)의 칠기 가운데 최고는 조칠雕漆로서, 그 특징은 두텁게 칠을 쌓아 장봉藏鋒의 도법刀法으로 풍만하고 원만하게 문양을 조각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형태는 순박하고 혼후渾厚하면서 세부는 또 극히 정교하여 질감면에서 특이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장성조치자문척홍반張成造梔子紋剔紅盤, 양무조관폭도방척홍반楊茂早觀瀑圖方剔紅盤, 안휘성박물관安徽省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장성조오간주선척서합張成造烏間朱線剔犀盒 등이 있다.

<명청시기明淸時期(1368-1911)의 칠기>
고궁에 소장된 칠기는 현재 18,000여건에 달하며, 그 가운데 영락시기와 선덕시기 및 건륭시기의 칠기가 가장 많다. 명대칠기의 빛깔은 모두 비교적 중후하며 , 청대에 이르면 매우 선염한 빛깔을 낸다.

영락연간, 과원창果園廠에서 전국의 명장名匠을 소집하여 칠기를 제조하기 시작하였으므로 칠기제조의 전성기가 출현하였으며, 오로지 어용으로 황실용의 칠기를 제작하였다. 선덕시기에 이르러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선덕황제는 재위기간이 매우 짧아(10년) 칠기의 제작도 상승단계에 처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덕황제가 칠기를 매우 좋아하였으나, 이 시기 과원창의 칠기제조는 이미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므로, 제조를 시키려 해도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태감太監이나 다른 누군가가 궁정의 칠기를 훔쳐 원래의 관지를 갈아버리고 다시 선덕관을 새겨넣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위조는 현시대의 기물을 고대의 기물로 만드는 것이지만, 이 경우에는 정반대의 상황이었으며, 실제로 이러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였다.

건륭시기 궁중에서 제작한 칠기는 이미 많지 않았다 . 주로 강남일대에 어용공장이 있어 궁에서 설계도를 주어 공장에서 책임지고 제작하는 주문제작의 개념이었다. 특히 조칠雕漆은 그 당시 궁중에서 만들 수 없었으며, 소주蘇州의 제품이 가장 많았다.

명청의 칠기는 14종류로 나누어진다. 일색칠기 一色漆器 , 조칠(ZhaoQi), 묘칠 描漆 , 묘금 描金 , 퇴칠 堆漆 , 전칠塡 漆 , 조전 雕 塡 , 나전 螺 塡 , 서피 犀皮 , 척홍 剔 紅 , 척서 剔犀 , 관채 款彩 , 창금, 백보감 百 寶 嵌 등이 있었다.

- 일색칠一色漆 은 어떤 문양을 가하지 않고 단색으로 칠한 칠기이며 , 궁정용의 기물에 이 기법을 상용하였다.

- 조칠(ZhaoQi)은 일색칠기 혹은 문양이 있는 칠기에 한 겹의 투명칠을 하는 것이다. 명청시기 궁정의 보좌寶座와 병풍에는 조금휴(Zhaojinxiu)를 많이 사용하였다.

- 묘칠描漆 은 칠조색묘회漆調色描繪 및 유조색묘회油調色描繪를 사용한 칠기를 포함한다 .

-묘금描金 은 칠기 위에 금으로 문양을 장식하는 것으로 , 이 가운데 가장 상견되는 것은 흑칠묘금黑漆描金이다. 북경의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는 만력용문약궤萬曆龍紋藥櫃가 이 기법을 이용한 기물이다.

- 퇴칠堆漆 은 고궁박물원에 소장된 흑칠운룡문대궤黑漆雲龍紋大櫃가 대표적이다 .

-전칠塡漆 은 조각한 부위를 색칠로 메워서 칠한 다음 건조된 뒤에 평평하게 갈아내는 방법으로 칠기를 장식하는 것이다 .

- 조전雕塡은 명대明代의 이래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 채색문양으로 칠면漆面을 장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문양의 위에 창금(QiangJin)을 하기도 하는 화려한 칠기이다.

- 나전螺塡은 명청의 칠기 가운데 수량이 비교적 많다 . 북경고궁박물원에 소장된 가정용문방승합嘉靖龍紋方勝盒이 있다. 명청의 나전기물에는 두터운 것과 얇은 것이 있다.

- 농나전은 17세기에 이르러 진일보 발전하여 상감이 그림처럼 더욱 세밀해졌으며 또한 금은편도 사용하였다.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는 영희도흑칠상, 흑칠서갑黑漆書甲, 어룡해수장방합魚龍海水長方盒 등이 있다.
- 서피犀皮는 칠면漆面에 고저가 평평하지 않은 바탕을 만드는 것으로 , 상면은 층을 따라 색칠을 하지 않고 최후에 갈아서 평평하게 하여, 원형으로 색칠의 층을 형성하는 것이다.

- 척홍(조칠雕漆)은 명청칠기 가운데 수량이 가장 많은 종류이다. 옻칠을 반복하여 두텁게 만든 평면의 칠태漆胎에 문양을 척각剔刻하는 옻칠기법 (휴식기법)의 일종이다.
명초明初에는 원대元代의 풍만한 풍격을 계승하였으며, 선덕이후에 퇴칠이 점차로 얇아지고 문양이 점차 성글게 되어, 가정시기에 이르러서는 마공磨工이 적어 능각稜角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만력시기에 이르러 각공刻工이 더욱 세밀하고 근엄해졌다. 청대에 들어와 날로 섬세하고 복잡해졌다.

- 척서剔犀는 ‘운조雲雕'라고 통칭하며 , 태골胎骨에 두세 종류의 색채를 규칙적으로 층을 따라 중첩시킨 다음에 기하문양을 척각剔刻하는 것이다.

- 관채款彩는 칠면漆面에 감지(減地-오목한 문양)를 각화刻畵하고 착색하여 넓고 평평한 칠면을 장식하는 것으로, 자주 보이는 실물은 병풍과 입궤立櫃 등이다.

- 창금. 궁정용구에는 창금을 많이 하였으며 명대의 노왕묘魯王墓에서 발굴된 개정운룡문방상蓋頂雲龍紋方箱은 명초 창금의 표준기물이다.

- 백보감百寶嵌은 각종 진귀한 재료와 산호, 마노, 호박, 옥석 등을 상감재료로 하여 휘황찬란하게 상감하여 볼록한 문양을 만드는 것으로, 명대에 유행하기 시작하여 청초에 절정에 달하였다.

2. 칠기의 제작기법 및 종류
* 묘금描金 : 칠기의 표면에 금색으로 문양을 묘사하는 장식수법이다. 흑칠黑漆한 바탕 위에 묘금하는 것이 가장 많으며, 그 다음은 주색朱色바탕이나 자색紫色바탕이다. 묘금을 ‘묘금은칠장식법描金銀漆裝飾法'이라고도 한다.

* 전칠塡漆 : 퇴각堆刻한 다음에 전채(塡彩-조각해 낸 부위를 메워서 채색)하고 갈아내어 문양을 드러내는 장식기법을 ‘전칠'이라 한다.

* 나전螺鈿 : ‘나전螺塡', ‘나전螺甸'이라고도 하며, 조개껍질로 인물과 조수鳥獸 및 화초花草 등의 형상을 만들어 투각하거나 휴칠(Xiuqi-옻칠)한 기물에 상감하여 장식하는 수법이다. 이러한 공예는 주대周代(B.C.1100-B.C.256)에 이미 유행하였으며, 현존하는 당대唐代의 나전실물을 보면 그 당시에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 점라點螺 : 점라칠기는 중국의 전통적인 공예품이다. 1966년 북경의 원대 유적지에서 나전으로 광한궁廣寒宮을 상감한 쟁반의 파편이 출토되었다. 명대는 점라칠기의 전성기로 공예수준이 이미 상당히 정밀한 정도에 도달하였다. 조개껍질과 야광소라 등을 원료로 하여 매미날개처럼 얇은 박편을 만들어 칠기 위에 ‘점으로 찍듯이 표현'하였으므로 ‘점라'라고 한다.
점라용의 재료는 일반적인 나전상감용보다 더 얇고 연하므로 ‘박라전薄螺鈿'이나 ‘연라전軟螺鈿'이라고도 한다. 현재 양주揚州등에서 여전히 점라칠기를 생산한다.

* 금은평탈金銀平脫 : 금은박편으로 인물과 조수 및 화훼 등의 문양을 조각하여 만들어 접착제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칠기 위에 접착하고, 마른 다음에 전체를 두세 겹으로 휴칠하고 다시 갈아내어 금은으로 된 문양을 드러나게 하는 것으로, 문양과 칠한 면이 평면을 구성하게 되며, 다시 윤을 내면 정미한 평탈칠기가 완성된다. 금은으로 장식한 문양면이 비교적 넓은 부위는 세밀한 문양을 조각하기도 하지만 금은의 얇은 조각을 뚫어서 장식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장식법은 공력이 많이 소모되고 재료가 비싸지만 금은의 광채와 칠기의 광택이 서로 어우러져 극히 화려하며 매우 귀중한 칠기이다.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가 안록산에게 각종 평탈칠기를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유양잡조酉陽雜俎》 , 《안록산사적安祿山事迹》 , 《태진외전太眞外傳》 , 《당어림唐語林》 등의 여러 책에 나타난다.

* 퇴칠堆漆 : 칠회漆灰를 사용하지 않고 바탕의 칠색깔과 다른 칠로 문양을 만드는 일종의 휴식(Xiushi-옻칠로 장식)기법이다. 현재에 퇴칠은 아교로 만든 재료를 사용하여 금을 붙이거나 채색을 칠할 수 있어 함의가 비교적 광범위하다.

* 조칠雕漆 : 칠을 퇴적시켜 평면으로 만들어진 부위에 문양을 척각剔刻하는 기법이다.
제작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목재, 자기, 피혁, 금속 등의 재료를 태골胎骨로 한다(전세품에는 목재로 만든 태골이 다수이다). 이 태골의 위에 칠회漆灰를 올리고 마포麻布를 붙인다. 그 다음은 옻칠로서, 반복적으로 중첩하여 칠을 하며, 적으면 8-10층을 많으면 100-200층 칠을 한다. 명대의 과원창에서 칠기를 제작할 경우에는 36번을 칠해야 합격이었다. 건륭시기 궁정 ‘조판처'의 규칙도 극히 엄격하였다. 칠한 횟수가 많을수록 두터워지며, 칠이 두터울수록 완성된 기물이 더욱 튼튼해진다. 이렇게 하여 반정도 건조되었을 때 이 칠태에 초고를 그려 문양을 조각한다.
중국의 조칠은 당대唐代에 시작되어 원대에는 가흥嘉興의 서당西塘이 가장 유명하였다 . 현대의 주산지는 북경北京, 양주揚州, 천수天水, 휘주徽州 등이다.
조칠은 대부분 선명한 주칠을 사용하였으므로 ‘척홍剔紅'이라고도 한다. 황색의 옻칠을 하면 ‘척황剔黃'이라 하며 , ‘척흑剔黑'과 ‘척록剔綠' 등도 있다. 이러한 명칭은 모두 옻칠의 색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옷감의 문양(금문錦紋)이 새겨진 평평한 바탕 위로 문양이 돌출되어 있으므로, 매우 화려하고 장중하였다.

* 반칠斑漆 : 위진남북조시기 칠장식법의 일종으로 고대에는 이 기법으로 수레를 장식하였다. 이 기법은 두 종류 이상의 색칠을 상호 교차시켜 각종 문양을 나타나는 것으로 동식물의 반점과 유사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이 밖에 단색칠로 심천深淺이 서로 다른 반점문양을 나타내는 것도 반칠이라고 한다.

3. 명청시기 운룡문雲龍紋의 차이
봉건사회에서 용은 황권의 상징이었다 . 송대이후 황제는 ‘진룡천자眞龍天子'가 되어, 황제가 용이고 용이 바로 황제였다. 이로 말미암아 용은 상서로운 의미를 함축하고 황권의 상징이 되어 공예품의 장식도안에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명청시기 용의 두드러진 특징은 상서를 상징하는 의미가 크게 강화되어 장식으로 변형된 용의 신체부위의 대부분이 길상문과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코는 여의형如意形으로 변형되고 발톱은 수레바퀴모양으로 변화되었으며, 용의 머리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는가에 관계없이 여의형의 코는 항상 정면을 향해 있다.

명청시기에 용문양은 이전시기보다 더 자주 장식도안으로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명말기에서 건륭시기에 이르기까지 용문양은 칠기장식의 주제문양이 되었다. 그러나 용의 형상은 시대마다 상이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명대의 용은 위엄스럽고 장중한 풍격으로, 몸뚱이는 약간 굵고 건장하며, 목은 뱀처럼 비교적 가늘고, 신체의 비례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입을 벌린 용(장구룡張口龍)과 입을 다물고 있는 용(폐구룡閉口龍)이 있지만, 입을 벌린 용의 경우에 입이 벌어진 정도가 크게 축소되고 혀는 대부분 입안에서 펼쳐진 형태로 구강口腔의 밖으로 뻗어나오지는 않았다. 머리는 납작하고 수척하며 눈동자는 이전보다 작아졌다. 이것은 전체적인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볼 경우, 시대마다 차이가 존재하였다. 머리카락으로 말하자면,
초기의 용은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묶여 뒤에서 앞으로 휘날리는 형상으로 뿔 사이에서 흩날리므로, 하나의 용뿔만 완전하게 드러나 보인다. 콧수염은 눈과 코의 사이에 돋아나 있고, 눈썹은 횃불과 유사하였다. 아래 턱의 짧은 수염은 다발로 묶여 양호羊胡처럼 비교적 길며, 사지四肢와 발톱은 굵고 건장하여 힘이 넘쳐 흘렀다.

중기를 전후하여 용의 머리카락은 작은 다발로 나누어진 형태인 것과 하나의 다발형태로 변화되었으며 , 항상 쌍각의 뒷부분에서 앞이나 위를 향해 거꾸로 휘날리므로, 이 기간의 용에는 항상 두개의 뿔이 모두 드러나 보인다.
중만기 특히 만력시기의 용은 머리카락이 하나의 다발이나 두 개의 다발로 묶여 뿔의 뒷부분에서 앞으로 거꾸로 휘날려 두 개의 뿔이 모두 드러나 보인다. 윗입술과 아래턱의 짧은 수염은 주로 정반대의 ‘┬'모양이며, 가지런히 묶인 수염도 있다. 뺨에는 자상물(刺狀物-찔려서 곰보 같은 형태)로 장식이 되어 있으며 눈썹은 대부분 ‘山'모양으로 되어있다.

청대칠기의 용문양은 극히 다양하며 초기 , 중기, 말기의 풍격이 상이하다.
청대초기의 용문양은 이마가 비교적 넓고 얼굴이 비교적 길고 위턱이 비교적 짧으며, 아래턱은 비교적 길게 앞으로 벋어나오고 날카로운 이가 밖으로 드러나 있어 선명하게 ‘지포천(地包天-땅이 하늘을 감싸는 형상)'을 형성하고 있다. 머리카락의 형식은 하나의 큰 다발이거나 몇 개의 다발로 묶여 바람에 휘날리고 있으며, 수염은 가늘고 길다.
건륭시기, 용의 머리는 비교적 크고 이마는 튀어나왔으며, 턱아래와 코 아래에는 명대의 만력시기의 수염과 유사한 짧은 수염이 나 있고, 이 수염은 정반대의 ‘┬'형태로 뒤쪽을 향해 벌어져 있다.
청대중후기, 용의 머리는 납작하고 짧으며, 정면을 향하고 있는 용의 코는 대부분 평면적인 여의형으로 처리되고, 홍색이 칠해져 있으나 용의 자태에서 이미 지난 날의 위엄과 기세는 사라져버렸다. 청대 후기에 이르러 용은 이미 늙은 티가 가득하고 신운神韻이 이미 완전히 사라져버려, 빈 껍질만 남은 듯한 형상이다. 용은 대부분 오조룡으로 작은 다리의 하반부가 소매가 좁은 옷을 입은 것처럼 갑자기 가늘게 줄어들었으며, 꼬리의 끝은 활짝 펼친 형태이다.

종합하자면 , 청대의 용은 명대에 비하여 뚜렷하게 늙고 우둔한 자태를 가지고 있다. 칠기의 용문양은 칠기의 시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의 하나가 된다.

4. 칠기의 감정
현재 모방도 가능하고 위조도 가능하지만, 그럴 듯하지 않을 뿐이다. 조칠공장의 기술자들은 모방제작할 수 있지만, 만들어낸 제품에 고대 칠기의 맛이 부족할 뿐이다. 특히 영락시기의 정교한 칠기는 현재의 공예기술로 만들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즉 현대에는 진품에 사용되었던 공예기법을 모두 다 모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인의 수준이 고대의 장인에 도달하지 못하고, 중후한 칠의 빛깔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특히 진품에 나타나는 모든 사항을 종합하여 만들어 낼 수가 없으므로, 진품과 모방품의 모든 특징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칠기漆器의 연대와 가치를 감별하려면 일반적으로 빛깔의 변화와 단문 (斷紋-토막토막 갈라진 형태의 선)의 존재여부를 관찰해야 한다. 다만, 칠기의 ‘사복단蛇腹斷'은 위조가 가능하며, 고대서적에 이미 위조방법이 설명되어 있었다.

위조칠기는 식별하기 비교적 쉽다. 즉 냄새를 맡으면 바로 식별할 수 있다. 일반 가정에서 20여년을 사용한 칠기라도 냄새를 맡아보면 칠냄새가 매우 강하게 나므로, 쉽게 알 수 있다.

송대宋代의 칠기는 검은색이지만 무광택으로 빛깔이 숯과 거의 차이가 없고, 목문(木紋-칠기의 바탕 재료인 나무의 결)도 깊이 칠과 밀착되어 칠 속으로 인입(印入-도장이 찍히듯이 파고들어감)되어 있으며, 기물의 표면에 마치 손금처럼 가늘고 자잘한 단문이 나타나는데, 우모문牛毛紋이라고도 한다. 만약 칠기에 이러한 무늬가 나타나 있으면 연대가 매우 오래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있다.

명대明代의 칠기는 표면에 약간의 광택이 있으며, 사복문(蛇腹紋-뱀의 배 부위의 비늘과 같이 갈라터진 가는 선)과 수준문(手준紋-갈라터진 손에 나타나는 것처럼 가느다란 선)이 나타난다.

명대의 조칠칠기雕漆漆器에는 흑색과 홍색(자색)이 있지만, 칠의 속 부위는 모두 흑칠黑漆로서 대부분 단문이 나타난다. 외면에 조각된 문양에는 경릉(硬稜-날카로운 모서리 부위)이 없고 광택이 있으며 매우 단단하다.

청대 강희시기의 칠기는 빛깔이 매우 선명하게 반짝이며 , 목문木紋은 대체로 명대와 유사하지만 단문이 전혀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명대의 칠기에는 모두 단문이 나타난다. 건륭시기의 칠기는 검은색 가운데 사이사이 목문이 나타나지만 모두 아주 미세하면서 눈에 잘 띠지 않을 뿐이다.

이처럼 시대가 오랜 칠기의 목문은 황색이거나 자색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새로 만든 칠기에 햇볕을 쪼이고 바람을 쏘이면 단문斷紋이 생겨나고 칠도 벗겨지지만, 빛깔은 검은색 가운데에 여전히 광택이 번쩍이게 느껴지며, 목문이 나타나지 않고 칠기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흑문黑紋이 있는 칠기는 칠을 할 때 , 우선 홍칠紅漆을 한 겹하고 다시 흑칠을 올리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 뒤에 조각한 것이므로 옆에서 보면 흑문이 나타난다. 그러나 고대의 칠기는 색깔에 관계없이 윤택하게 반짝이며, 오래되어 건륭시기까지 올라가는 칠기에서는 홍색도 자색을 띠지 않지만, 새로 만든 칠기의 홍색은 약간 자색이 나타난다.

조칠기雕漆器를 판별할 때에는 주의해야 한다 : 기물에 칠을 할 때에는 반드시 그늘에서 건조시켜야 하며, 만약 건조되지 않은 상태로 바람을 쏘이면 쉽게 갈라져서 사복문蛇腹紋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감별할 때에 사복문이 일어난 것에 의해서만 칠기의 신구新舊를 판정해서는 않된다. 그러나 수준문은 여러 해가 경과되어야 형성되는 것으로서 새 칠기에서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조전칠기雕塡漆器를 감별할 경우에는 자세히 색깔을 판별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조자는 낡은 나전螺鈿을 제거하고 새로 칠을 하여 그 부위를 메워넣은 다음, 연기로 훈제하고 찻물을 칠하기도 하므로 색깔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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